미국 경제 어디로 가나…
최근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미국인 10명중 8명은 미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NBC방송의 최신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미국인 중 76%는 미국 경제가 내년은 물론 당분간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가벼운 몸살 정도로 치부했지만 올해들어 조금씩 경기침체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고 있다. 투자의 귀재로 유명한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경제전문방송 CNBC에 출연한 자리에서 아예 미국 경기의 침체와 장기 불황이 확실하다고 단언, 듣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과연 미국은 다시 한 번 대공황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장기적인 경기침체가 불가피
현재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만성적인 고통이 온다는 분석이다. 리먼 브러더스의 에단 해리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슬로우 모션 경기침체(slow-motion recession)가 진행되고 있다”며 “경제가 2~3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2년간 일자리를 창출하기에 부족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예측, 헤지펀드 사상 최대인 37억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유명한 헤지펀드 매니저 존 폴슨은 6월18일 모나코에서 열린 GAIM 국제헤지펀드회의에서 “신용 위기가 지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 하반기는 전반기보다 상황이 나빠질 것이고 경기침체는 2009년까지 지속된다”며 “경기침체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소비자 지출 감소로서 앞으로 더욱 더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주택시장에서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금융시장이 안정화되고 있다는 신호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폭락... 폭락... 폭락
실제로 최근 드러난 미국 경제의 실상은 그다지 좋은 편이 못 된다. 주택 가격은 1년 만에 전국 평균 16% 가량 폭락했다. 이는 소비자의 보유 자산 가치 하락이라는 점에서 소비 침체와 경기불황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증시 역시 휘청거리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발생한 2007년 10월 이후 증시의 시가총액 중 20%가 사라져 1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7월 들어 ‘베어마켓(Bear Market: 약세장)’ 진입이란 말도 여기저기서 들린다. 역사상 미국 증시가 전고점 대비 20%이상 하락하며 베어마켓에 진입한 과정을 볼 때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진입 후에도 10%가 더 떨어졌고 회복하기까지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추가 하락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표1: 최근 1년간 S&P500 인덱스>
▲고물가와 저임금의 이중고
치솟는 물가와 그와 반대로 움직이는 실질임금은 미국인들의 구매력을 크게 떨어뜨리면서 경기 침체의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 당 4.1달러로 1년 전에 비해 약 40% 상승, 소비자물가지수가 4%에 달하게 되는 주요 원인이 됐다. 반면 임금은 주급 기준으로 물가상승률보다 낮은 2.9% 오르는 데 그쳐 실질임금은 되레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예측 기관인 컨퍼런스보드의 6월 소비자 신뢰지수는 16년 만의 최저치인 50.4를 기록, 지난 6개월 동안 40포인트가 날아갔다. 지수가 100 이상이면 경기 전망이 ‘긍정적’이고 이하면 ‘부정적’이다. <표2: Conference Board Consumer Confidence Index>
▲줄어드는 일자리, 늘어나는 실업
늘어나는 실업도 경기에 악영향을 미친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5월 미국의 실업률은 5.5%로 전년동기대비 1% 가량 상승했다. 여기에 구직을 포기하거나 정규직 근로자에서 시간제 근로자로 전환한 경우 등을 포함할 경우 실질 실업률은 전년대비 1.4% 포인트 높은 9.7%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미국의 실업률은 내년 말 6.4%, 실질 실업률은 약 11%로 정점에 이를 전망이다. 고통은 이제 시작이라는 뜻이다. <표3: 미국내 실업률 현황>
▲비틀거리는 금융업계
금융권은 올해 내내 계속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6일 CNN머니에 따르면 미 금융권은 2008년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경영진의 교체 및 배당금 삭감, 대손상각 등의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주의 흐름을 나타내는 KBW은행지수가 33% 하락한 데 이어 S&P500 기업에 속한 은행들의 2·4분기 순이익 역시 전년 동기대비 60% 감소했다. 시장조사업체 딜로직이 발표한 상반기 미국내 M&A는 총 6,942억 달러 규모로 전년 대비 30% 줄어들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로 촉발된 금융시장 위기가 아직까지 끝나지 않으며 이에 따른 평가손실 규모도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산한 9,450억 달러보다 훨씬 많은 1조3천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을 제시하기도 했다. 미국내 투자은행(IB)들은 하반기에도 추가로 자산을 상각하고 배당금을 삭감해야 할 처지다. <표4: 지난 1년 간 KBW은행지수>
▲정부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경기를 되살리려고 애쓰고 있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부시 행정부가 1,070억 달러의 세금 환급액 중 이미 860억 달러를 가계에 환급해줬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증가하는 실업률은 정부의 경기 부양 시도가 실패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금리를 이미 낮출 대로 낮춘 상황에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마땅치 않은데다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서 불황 심화 가능성에도 불구, 조만간 금리를 올려야 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태다.
▲회복까지 최소 4~5년은 걸려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겪은 경기 침체는 현재까지 모두 7번이다. 경기 곡선이 하강, 바닥을 지난 뒤 회복까지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은 게 대부분. 하지만 이번 사태는 좀더 복잡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드폴대 경제학과 우재준 교수(사진1)는 “지금 미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소는 크게 하우징 버블과 금융권 신용 위기, 고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의 폭등 등 3가지”라며 “악재가 겹친 만큼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그만큼 더 시간이 걸리게 된다”고 말했다. 우 교수에 따르면 최소한 내년까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지고 경기의 바닥은 그 이후가 될 전망이다. 따라서 완전히 경기가 회복되는 시점은 2~3년 뒤인 2011년 혹은 2012년이 된다.
■경기침체는 과장, 조만간 회복될 것
하지만 미국, 나아가 세계 경제가 침체되고 있다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존재한다. 최근의 경기 하강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얼마나 오랫동안, 또 얼마나 깊게 나타날 것인지에 대해서는 낙관론의 여지가 있다. 역사상 미국의 경기 후퇴는 보통 전 세계 경제의 공황을 가져왔지만 이번에는 경기 하강이 그렇게 심각하지 않아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고 6.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실업률 또한 과거 경기하강과 비교하면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다. 연방정부가 정책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에 앞서 지출을 늘리고 있고 ‘약한 달러’로 인한 수출 증대 효과 등이 발생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중대한 일자리 감소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강한 달러 올 것
달러 약세를 계기로 내수 산업 활성화를 통해 다시 ‘강한 달러’ 시대가 올 수 있다. 지금의 약달러 현상에는 미국의 고질병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해 묵인하는 측면이 있는데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미 달러 약세가 올해로 끝나며 내년엔 상승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아 주목을 받고 있다. 7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모건스탠리는 유로 당 달러 가치가 현재 1.57달러에서 연말엔 1.53달러, 내년 말엔 1.40달러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표5: 달러 대 유로 최신 추이>
이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더 이상의 추가 금리 인하는 없다고 못 박은 데 이어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 역시 연이은 인상 조치보다는 당분간 동결 쪽으로 갈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달러화가 유로화에 대해 현재 약세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언제든지 상황에 따라 강세로 돌아설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표6: 미국 기준 금리 추이>
▲유가도 장기적으로는 안정화 전망
달러의 강세와 금리 상승은 향후 유가 안정화에 기여하게 될 전망이다. 현재 국제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기름 값이 현재의 배럴당 140달러를 넘어 150달러는 추월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또 골드만삭스 등 일부 기관에서는 수급 불안의 이유를 들어 2년 내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르는 ‘대급등(super-spike)’ 시대를 맞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이에 반해 리먼브라더스는 아시아 지역의 경기후퇴로 원유수요가 감소해 유가가 떨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헤지펀드 투자자인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도 현재 원유투자시장에 투기거품이 껴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유가 안정화를 예상하는 기관들은 허리케인 등 악천후나 지정학적 불안 요소를 배제할 경우 2009년 국제 유가는 배럴당 90~10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침체 자체가 거짓
상당수 전문가들에 따르면 최근의 경기 침체 논란 자체가 언론이나 투자자들이 만들어 낸 왜곡된 이미지인 것으로 지적됐다. 1년 동안 성장률이 3% 아래로 떨어질 때 경기 침체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의 경제 성장률은 지난 2분기 동안 둔화되긴 했지만 2007년 2, 3분기에 3% 이상을 기록했다는 설명이다. 또 경기 침체의 판단 기준인 노동시간과 생산성 역시 나빠지는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논리의 근거로 제시됐다. <표7: 2001-2008년 노동생산성>
2004년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에드워드 프레스콧 애리조나 주립대 교수(사진2)는 미국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섰다는 워런 버핏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서브프라임 때문에 발생한 손실 규모가 지난 2001년 증시 대폭락 때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 세계 금융기관들이 최근의 신용 위기에 과민반응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은 지금이 바닥
경기에 대한 전문가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아직까지 부동산 투자는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대부분이지만 일부에서 가격이 바닥을 쳤다는 시각을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해 초 서브프라임 사태를 정확하게 예견,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높였던 짐 크래머(사진3) 애널리스트는 최근 경제 전문 채널 CNBC에서 “다시 부동산을 구입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강조, 주목을 받았다. 크래머에 따르면 현재 건설 중인 주택은 2년 전에 비해 4분의 1에 불과한 반면 미국의 인구수는 증가일로에 있어 조만간 주택 품귀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나 자신이 9개월 전 부동산 가치 폭락을 경고했던 사람”이라면서도 “하지만 지금이 부동산 가격의 바닥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지금 사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고 말했다. 봉윤식 기자 feedpump@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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