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라에 가서 본토 음식을 배우는 것은 그 곳의 냄새, 색깔 뿐 만이 아니라 그 곳 특유의 재료라던가 또는 같은 종류의 야채라도 약간 모양이 다른 것 등 보고 배우는 것이 참 많았습니다.
몇 해 후에(87년) 남편이 저에게 이탈리아 플로렌스에 있는 유명한 사람의 요리 학원에 가서 단기간 배우는 코스를 생일 선물로 주었습니다. 줄리아노 부지알리라는 사람은 책도 많이 쓰고 미국에까지 상당히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이라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 뿐 아니라 멀리 뉴질랜드에서까지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루굴라라는 약간 매운기가 나는 샐러드 잎에 좋은 올리브 기름을 뿌리고 소금을 조금만 뿌린 것이 그렇게 맛이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야채가 독특했지만 맛이 있는 올리브 기름은 정말 다른 것 같았습니다.
올리브 기름이라고 해서 다 같은 게 아니고 익은 정도에 따라 혹은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도 본토에 가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성숙했지만 익기 전의 올리브를 따서 짠 기름은 ‘엑스트라 버진(extra virgin)’이라고 부르는데 그 기름이 맛이 짙고 무척이나 고소하였습
니다. 올리브는 20%가 기름이라고 하더군요. 놀랍지요? 익은 올리브로 짠 기름은 기름의 농도가 다릅니다. 질의 차이가 나는 것은 익고 안 익은 차에서만 나는 게 아니라 올리브에 열을 가해서 짜면 기름은 더 빼지만 질을 덜 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80년대 뉴욕의 고급 이탈리아 요리집에서 유행하던 ‘자바이오니’도 그때 배웠습니다.
달걀 노른자와 설탕을 중탕으로 익히고 거기다가 ‘말살라’라는 달콤하고 짙은 술을 넣습니다. 그리고 달걀 흰자를 거품 내어 함께 섞어 약간 따듯하게 서브하는 것입니다. 부지알리 스튜디오에서는 달걀 흰자 대신에 크림을 부풀려 섞었습니다. 흰자에서 느껴지는 그 독특한 맛 대신에 고소한 크림이 들으니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유명한 술 농장을 방문 하였습니다. 구불구불 언덕지고 끝도 보이지 않는 포도밭을 구경하고 기계화된 제조 과정을 설명 듣기도 하였습니다. 음식과 함께 서브되는 술이 서양 요리에서는 우리 음식의 정종이나 막걸리보다 훨씬 중요하거든요. 어떤 때는 서브되는 음식에 따라 술을 바꾸어 내놓기도 합니다. 저녁에는 매일 다른 곳에 가서 먹었습니다. 어떤 때는 이삼십 분씩 시골길을 달려가서 이런 데에 먹을 곳이 있을까 하고 의심스러운 곳도 있었지만 속으로 들어가면 잘 해 놓은 정원에 테이블이 여럿 있는 레스토랑이 있었습니다. 항상 저의 눈을 끈 것은 여자들이 모두 자기에게 맞게 멋있게들 차려 입은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특히 멋을 아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음식은 지방의 특색을 나타내는 곳이라든가 또 미국에서 잘 모르는 특유한 음식을 맞보도록 골랐더군요. 우리가 가 본 여러 곳 중에서 아마 이름이 ‘리스토란테 베키오(Ristorante Vecchio)’라고 하는 곳이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이었습니다. 음식이 유난히 맛이 있기 때문인 것도 있고 그 집에서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빨간 바탕에 무늬가 있고 디자인도 유난히 야한 옷을 입었습니다. 이상하게 저는 생긴 것과 전혀 다르게 어른들이 ‘쯔쯧…’ 하고 혀를 찰 야한 옷 아니면 좀 깡패 같은 옷이 어울리거든요. 그 날은 거기다가 구두까지 빨간 것을 신었습니다.
고기를 아주 맛있게 구워 썰어서 서브했습니다. 판짜넬라라는 것도 처음 먹어 보았습니다. 빵을 물에 적시어 꼬옥 짜서 풀어트린 후에 거기다가 올리브 기름, 잘게 썬 토마토, 파슬리를 넣은 것인데 정말 여름 음식으로 만점이었습니다. 제가 나중에 집에 와서 만들어 보았는데 그 맛이 나지 않아 무척이나 실망을 하였습니다. 빵이 다른 점도 있지만 올리브 기름이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고 생각 했습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모두들 한참 정신없이 떠들고 있는데 웨이터가 은 쟁반에 흰 냅킨 덮은 것을 들고 와서 저, 뒷 테이블 사람들이 보낸 선물입니다 하며 정중하게 저에게 내 밀었습니다.
모두들 얘기를 중단하고 제 쪽으로 시선이 집중 되었습니다. 저는 뒷 테이블에 앉은 그룹을 힐끗 쳐다본 후 냅킨을 들었지요. 쟁반 위에는 저의 빨간 하이힐이 한 짝 올려져 있었습니다. 저는 뒷 테이블의 장난꾸러기들을 쳐다보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고 정신없이 웃었습니다.
제 주변의 사람들이, 아니, 어떻게 저 사람들이 네 하이힐을 집었니? 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오래 앉아 있으면 한쪽 신을 벗고 다른 발 위에 올려놓거나 다리를 꼬고 앉는 버릇이 있어서요. 모두들 얼굴에 웃음이 활짝 번졌습니다.
뒷 사람들이 몰래 다가 와서 주인 없는 그 신을 집어 갔는데도 우리가 얘기 하느라고 모른 것이었습니다. 레스토랑을 나오면서 그들에게 웃으면서 눈짓으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풀로렌스에서 재미나게 지내다 가셔요 하고 그들이 우리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그런 장난스러운 짓을 하며 사는 인생의 태도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나라에 가서 본토 음식을 배우는 것은 그 곳의 냄새, 색깔 뿐 만이 아니라 그 곳 특유의 재료라던가 또는 같은 종류의 야채라도 약간 모양이 다른 것 등 보고 배우는 것이 참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에서 그 나라 음식을 배우는 것과 또 차이가 있었습니다.
음식도 음식이고 이탈리아는 정말 모든 것이 너무나 예술적인 나라였습니다. 낡은 옛날 건물을 개조하는데 옛 것을 살리면서도 현대적인 것과 잘 어울리게 멋을 부려 고쳐 놓았고 집의 색깔도 미국이나 프랑스 혹은 독일에서 보는 것과 또 달랐습니다. 약간 짙은 중간 색을 많이 쓰는데 화가들이 섞어 놓은 색깔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만드는 옷감의 무늬나 색도 다른 나라에서 만드는 것과 또 다른 뉘앙스가 있지 않습니까?
플로렌스에 가시면 우피찌 박물관에 꼬옥 가 보셔요. 저는 거기서 보티첼리의 그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다시 한 번 느꼈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구경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박물관에 가시려면 가능하면 아침 일찍 가셔야지 그런데는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표를 살 때도 줄이 꼬불꼬불 입니다. 그림을 보는 데도 인파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시간 낭비가 너무 많거든요. 작품이 너무 많아 한 두 시간 정도 보고 다시 가시는 것이 좋지요.
플로렌스 여행에서 돌아와 저는 그 여행담을 뉴욕한국일보에 실었습니다. 신문사측에서 독자들에게 요리를 소개하면 어떻겠느냐는 청을 하였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 후 한국일보에 ‘김영자의 서양 요리교실’이라는 칼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사는 음식의 유래라든가 여행담 혹은 서양 요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얘기를 조금 쓰고 사진과 함께 요리를 하나씩 소개하는 칼럼이었습니다. 꿈지럭 거리는 여자에게 혹이 하나 더 붙었습니다. 그 후부터는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데 가면 제 기사를 읽는다는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