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 K모씨(80·여), P모씨(65·여), K모씨(75·남).
장소 - LA 한인타운 내 한 아파트.
줄거리 - 룸메이트인 K모씨와 P모씨, 두 할머니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함께 살면서 친자매처럼 가까워졌다. K씨에게는 5세 연하의 남자친구 K모씨가 있었다. K 할머니는 연하의 ‘남친’ 때문에 속앓이를 해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노환으로 사망했다. P모씨는 친언니 같던 룸메이트가 갑자기 사망하자 속상한 마음에 그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언니 살려내라”며 한바탕 말싸움을 벌였다. 말다툼 발생 20여 시간 후 K 할아버지는 연상의 여자 친구가 살던 아파트를 찾아가 룸메이트였던 P모씨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한 후 현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편의 영화 줄거리 같지만 지난주 한인타운 9가와 아드모어 근처의 한 아파트에서 실제로 발생한 살인-자살사건의 내용이다. 사건 현장에서 취재를 하며 하얀색 천에 덮여 운반되던 2구의 시체를 봤다. 도대체 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고 세상을 등져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가족도 없이 여자 친구에게 의지하며 살던 K모씨는 여자 친구가 갑자기 사망하자 자포자기했던 것일까.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K 할머니는 왜 가족과 살지 않았을까. 쾌활한 성격의 P모씨는 어떤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을까. 두 사람이 생활해온 허름한 아파트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은 말로만 듣던 한인 독거노인들의 현실을 보여줬다.
취재를 하면서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 주변은 한인 독거노인들이 모여 사는 일종의 ‘독거노인 집성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건현장에 모여든 이웃 노인들은 한 아파트에서 사흘동안 세번 시체가 나갔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한 한인노인은 “며느리 눈치 보기가 싫어 몇년전 한인타운으로 이사왔는데 이번 사건 때문에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라고 난리”라고 말했다. 교외지역에서 우두커니 혼자 있는 것 보다 한인타운에 오면 사람 사는 맛이 나서 노년에 ‘출가 독립’을 선언했다는 것.
미국에서는 정부가 제공하는 각종 의료 혜택과 연금 덕분에 노년을 편안하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정부가 효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생겨날 정도다. 하지만 사건현장에서 만난 독거노인들은 아무런 안전망 없이 변방으로 내 몰린 모습이었다. 그들의 노년은 고단해 보였다.
한인타운 곳곳에 고급콘도가 즐비하고 주말이면 LA외곽에서 다양한 배경의 젊은이들이 재미를 찾아 한인타운으로 몰려든다. 화려한 한인타운의 이면에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외롭게 사는 노인들이 존재한다. 이들도 한인타운의 소중한 구성원인 이상 커뮤니티 차원에서 노인들에게도 관심을 가져야 하겠다.
김연신 사회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