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라브레아 애비뉴를 지나면서 한 꽃집 간판에 붙은 문구가 눈길을 끌었다. “축하합니다. 동성애 혼례. 꽃 주문하세요.”
동성 결혼을 허용한 캘리포니아 대법원 판결이 17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면서 일상적으로 더 흔히 접하게 될 광경이다. 동성애자들에겐 그동안 고대하고 추구해온 세상이 왔다는 징표가 될 것이고 반대자들에겐 말세의 징후로 여겨질 것이다. 분명한 점은 동성 결혼이 캘리포니아에 도착했고 그 반향은 오는 11월 선거에 반영될 것이라는 것이다.
지난 2004년 대선 때도 매사추세츠 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허용하면서 동성결혼 이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적잖은 공훈을 했다. 이 과정에서 기독교연맹, 가족연구협회 등 기독교 정치단체들의 역할이 컸는데 당시 한인 대형교회에서 장로가 공화당이 이기게 해달라고 대표 기도하는 걸 들은 기억이 아직도 난다.
세상에 그 많은 죄악 중에 오늘날 기독교가 동성애에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 때문에 천벌을 받았다고 널리 해석되지만 혹시 천사를 강간하려는 사악함 때문은 아니었을까. 모세의 율법은 동성애자를 돌로 쳐 죽이라고 가르치지만 토요일에 일하는 사람, 부모에 거역하는 자녀, 무교절에 발효된 빵을 먹는 사람들도 돌로 쳐죽일 죄인들이다. 사도 바울이 동성애를 하나님에 대한 거역으로 규탄했지만 바로새인 출신인 바울은 다른 제자들보다 금욕주의에 더 민감했다. 동성애가 거의 모든 인간사회는 물론 동물 세계에서도 5-10%가량 나타나고 개인의 선택이 아닌게 과학적으로 밝혀진 오늘날 이를 반드시 거역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바울의 서신을 시대적인 이해와 함께 해석하지 않으면 과거 노예제도를 지지하는 주장에 이용된 것과 같은 오류가 따를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가 동성애에 치중하는 이유는 어쩌면 다른 가르침보다 더 쉬운 선택이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의 가르침은 참으로 지키기 어려운 일들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구멍 사이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 정신이면서도 늘 자신과 갈등을 가져오는 부분이다.
반면 동성애 규탄은 동성애자들을 제외한 90-95%의 신자들에게 요구하기 더 쉬운 일이다. 중세 시대에 교회에서 유태인들이 예수를 ‘살해’한 ‘사실’을 그처럼 강조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라면 동성애 결혼보다 허리케인 캐트리나 때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약자들이 죽어가는 모습에 더 분노를 느끼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66%가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절반이 여전히 부시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다.
동성애는 개인의 문제이고 약자를 돕는 일은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미국 기독교 단체들의 정치 활동은 개인 문제를 사회화하고 반대로 사회적 평등, 환경보호 등의 이슈는 개인 문제로 무시해왔다. 무엇보다도 기독교 단체의 정치활동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비쳐지는 모습이 기독교의 복음은 사랑보다도 동성애 반대로 정의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정아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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