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좀 떨어진 곳의 노인아파트를 업무 차 방문했을 때였다. 빌딩 안으로 막 들어서는 데 갑자기 자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일인가 놀라서 달려가 보니 아파트 매니저인 백인 여성이 “프레젠트!” 하며 한인 할머니가 내민 김치 통을 받고는 그 냄새 때문에 벌어진 사태였다. 할머니의 말인즉 김치가 맛있게 잘 익었길래 매니저에게 좀 나눠주려고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그 매니저는 평소 순하고 다민족에 대한 이해 또한 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갑작스레 변을 당한 듯 어이가 없어했다.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리 기분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살짝 찌푸린 얼굴로 김치통을 멀리하며 정중하게 사양을 했다. 할머니의 ‘프레젠트’를 거절한 것이었다.

그 할머니는 미국에서 꽤 오래 사신 분이라 약간 의아했다. 서양인들이 김치냄새를 싫어하는 것을 모르셨을까, 아니면 요즘 한국 방송에서 가끔 이야기하는 김치에 대한 서양인들의 좋은 반응 때문에 그랬을까.

그것도 그럴 것이 미국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음식이 생선초밥 즉 스시로 되어 있으나 가장 잘되는 음식점이 또한 스시 집이기도 하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한국의 김치는 세계적으로 좋은 음식으로 알려졌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생소해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특히 각종 젓갈을 넣고 담은 김치가 푹 익은 냄새를 외국인 친구들이 표현할 때는 오래된 치즈 냄새, 심하게는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고까지 한다.

LA에 살다보면 다양한 문화를 마음껏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진다. 한인 타운을 중심으로 일본, 중국, 태국, 아르메니아, 남미, 아프리카의 이디오피아 타운까지 가까이 있어 이들 민족의 음식과 풍속을 어렵지 않게 익힐 수 있다.

베트남의 쌀국수, 일본의 야끼토리나 오차즈케, 인도의 다양한 카레음식, 아르메니아의 바클라바(약과와 같은 과자 종류), 멕시코의 코시도(소고기 국)등 한인들의 정서와 입맛에 맞고 맛이 좋은 음식들이 많이 있다.

개개인의 식성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민족에 따라 맛과 재료가 특징이 있어 쉽게 구분 지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있는 나라들은 음식종류도 다양하고 김치와 같이 발효 음식 또는 절이거나 말린 음식들이 많다.

같은 남미 사람들이라도 매운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우리 음식에 지나칠 정도로 나쁜 평가를 하는 사람들이 있듯이 한인들도 타민족 음식에 대한 반응이 각각이다. 한인들 중에는 남미나 동남 아시아인들의 실란트로 또는 양고기 냄새를 유난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10여년 넘게 이민생활을 했어도 우리 것만을 고집하느라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를 기피하는 한인들이 많다. 심한 경우에는 한국에 많이 있는 TGIF, 코코스 등 미국의 체인 음식점을 한국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우리의 것을 지키며 사랑하는 것은 중요한일이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미국에서 서로를 배려하며 크고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타민족들의 생활관습 그리고 그들의 독특한 음식들에도 관심을 가져보아야 하겠다.

맛을 보지도 않고 음식을 냄새로만 판단해 세상에서 가장 유산균이 많다는 김치를 즐길 기회를 놓친 백인 매니저,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만 먹어 산만한 엉덩이로 힘들게 걸어 다니는 그녀를 보며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랫동안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인디언 속담이 생각난다.

토마스 오 소셜 워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