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 불을 지르지 마라(Don’t burn your bridge). 미국 사람들은 어떤 관계에 문제가 있을 때 이런 표현을 자주 하곤 한다. 우리말로 하면 일정 선을 지켜라…정도 일까? 지금 끝내고 다시는 안볼 사람들이라면 모르지만 우리 인생은 언제 어디서 이 사람들을 또 만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을 지켜서 좋게 좋게, 상대방과의 관계를 부셔 트리지 말라는 충고일 것이다.
살다보면 정말 힘들고 어려운 관계들에 엮이게 된다. 기독교에서는 우리가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있는 티만 본다”고 한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나를 돌아보고 나의 문제점을 먼저 찾으라는 말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다리에 불을 지를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보통은 ‘악연’이라는 말로 관계를 정리한다. 어차피 좋은 인연이 될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고민해봤자 좋을 수 없다는 간단명료한 결론이다. 그렇지만 어디 인생이 그리 간단한가. 어제 원수였던 사람을 또 다른 곳에서 만나고, 어제 친했던 사람이 내일 적이 되고… 이런 일은 부부관계, 부모와 자녀관계, 동네 이웃과의 관계, 회사동료와의 관계 등등 어디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 하지 말아야 할 말 리스트가 나오고, 싸움의 법칙이 있고, 아이에게도 이웃과도 일정 선을 넘지 말라는 말들이 오간다. 직장을 구할 때는 평판이 어떤지 여기저기 알아보는 게 당연해지고, 나갔던 회사를 다시 들어오는 경우도 있는 만큼 최대한 인간관계를 좋은 수준으로 유지해야한다는 것이다.
요즘 한국 정치를 보면 너무 여기저기서 다리에 불을 지르는 것 같다. 다시는 안볼 사이들처럼 서로를 비방하고 헐뜯고 있지만, 사람들은 저들이 언젠가는 또다시 뭉쳐서 새로운 이름으로 나타나리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불을 지르는 것도 콧등으로 보는 것이다. 다 타버린 다리를 다시 세우고 교통하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드물게 다리에 불을 지르는 것이 해결책이 될 때도 있다. 계속해서 내 인생에 개입하고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해가 된다면 과감히 불을 질러 관계의 끈을 태워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방법이다. 내가 상처받은 만큼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한 노력이면 충분하다. 내 집처럼 들락날락하는 이웃에게는 내 집의 원칙을 알려주고, 상처가 되는 말들을 생각 없이 내뱉는 사람에게는 그 말이 상처가 됨을 알려주고, 나를 마음대로 조종하려드는 사람에게는 노우라고 말할 수 있는 정도면 되지 않을까.
나는 가끔 누군가의 일에 참견하고 싶을 때, 중학교 3학년 때를 떠올리곤 한다. 짝꿍이 스테이플러로 뭔가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저렇게 하면 더 좋은데…하면서 내가 자꾸 참견을 했던 모양이다. 짝꿍은 이렇게 대답했다. “난 네가 아니야”
그 열다섯 살에 나는 내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충격과 함께 깨달았다. 친구는 다리에 불을 지르는 대신 경계선을 정해서 심각한 상황이 되는 것을 막았던 것 같다.
다리에 불을 지르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신 그전에 경계선을 정하고, 그 경계를 알리는 노력이 있으면 되지 않을까. 그래도 안 되면…그건 각자 고민해보자.
유정민
텐 커뮤니케이션스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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