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40대 한인 여성이 갑작스런 뇌사 판정 후 자신의 모든 장기를 남김없이 기증하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세상을 떠난 감동스런 사연이 새해 들어 뉴욕 한인사회를 촉촉이 적시고 있다.
평소 건강했던 L씨(46세)에게 불행이 닥친 적은 지난 16일. 갑자기 두통을 호소하다 쓰러져 퀸즈 뉴욕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지만 현대의학으로는 소생하기 힘들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음 날 결국 뇌사 통보가 내려졌고 병원측은 가족들에게 조심스레 장기기증을 권했다.
가족들은 “어떻게든 살려보려 했지만 사망진단이 이렇게 잔인할 줄 몰랐다”며 결국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남편 K씨는 “몇 주 전 한국에서 최요삼 권투선수가 뇌사판정 후 모든 장기를 기증하고 떠났다는 소식을 텔레비전으로 접하면서 부인과 함께 ‘나중에 우리도 혹시 저런 상황이 된다면 장기기증을 하자’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며 “그때 그 말이 이렇게 빨리 현실로 다가올 줄 몰랐다”며 흐느꼈다.
기적처럼 놀라운 일들은 장기기증을 결정한 다음부터 시작됐다. 가족들은 두 달 전 갑자기 혈압이 오르면서 신장 기능 악화로 투석을 시작한 막내 남동생(38)에게 신장 기증을 먼저 해주길 요청했다. 하지만 동생은 장기이식 신청자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지도 않았고 게다가 뉴욕 메트로 지역에
서만 신장 이식 희망 대기자가 무려 5,043명. 평균 대기기간도 7년이 걸리는 상황이었다.
동생이 다니던 노스 쇼어 병원을 찾아 도움을 요청했지만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기념일 연휴여서 그 또한 만만치 않았던 것. 하지만 복도를 나서면서 만난 백인 여의사가 막내 남동생을 기억하고는 팔을 걷고 나서 불과 3~4일 만에 이식 수술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유족들은 막내 남동생의 투석 치료 때마다 동행했던 큰 누나가 얼마 전 의료진의 노고에 감사하며 전달한 작은 마음의 선물이 이렇게 소중한 결실이 되어 되돌아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또다시 가슴을 쳤다.
특히 누나와 막내 남동생의 신장이 쌍둥이도 힘들다는 99%의 일치를 보여 또 한 번 의료진을 놀라게 했고 이식 후 보통 수차례 투석치료가 필요한데도 동생은 신장이 바로 제 기능을 찾았을 정도. 평소 막내 동생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던 큰 누나의 동생 사랑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L씨는 동생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환자들에게 새로운 삶을 심어주고 21일 생을 마감했고 25일 파인론 묘지에 안장됐다. 장기 적출 수술을 담당한 의료진은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장기를 한 번에 기증하기는 뉴욕
에서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다. 또한 뉴욕에서 친인척으로부터 두 개의 신장을 한꺼번에 기증받은 환자도 흔치 않다”고 전했다. 유족들은 “2남2녀의 맏이로 늘 베풀기를 즐겨하더니 결국 땅에 뿌려진 밀알이 되어 새 생명을 온 세상에 나눠주고 떠나갔다. 우리가 앞으로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본보기가 됐다”며 슬픔 속에서 피어난 사랑의 선물을 가슴에 고이 묻었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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