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 계절이 지나고 또다른 대선의 계절이 다가왔다. 태평양 건너에서 열린 대선에 한인들은 열광을 넘어서 직접 발품까지 팔아 한국행에 나선 반면, 당사자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열리는 대선에는 별 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국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해야 할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 아니냐는 착각이 들 정도다.
국민의 정부 시절 한국의 재외동포정책은 현지화 전략이었다. 한국인이란 핏줄을 갖고 있지만 뿌리를 내리고 사는 새로운 조국에서 열심히 살고, 국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해 그곳에서 역량을 키워내는 것이 결국 애국하는 길이란 뜻이었다.
그러나 일부 한인들은 모국인 한국 정부의 이 같은 정책에 섭섭함을 내비쳤다. LA한인사회의 많고 많은 단체들이 단체 운영자금을 한국 정부에서 지원받고 있는 2008년의 현실에 비춰보면 섭섭함이 무리도 아니다. 70년대 본격적인 이민 행렬이 시작된 후 3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모국에 대한 젖줄을 떼지 못 하는 모습은 흡사 몸은 컸지만 의식과 능력은 유아 수준에 머물러 있는 미숙아를 떠올린다면 지나친 것일까.
한인 사회의 미국 정치에 대한 관심과 역량을 보여주는 좋은 예는 LA의 유일한 정치력 신장 단체인 한미연합회(KAC)의 퇴보다.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정치력 신장 단체인 KAC의 위상은 과거 5년 전과 비교해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재정은 악화되고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줄어들고 내분마저 겹쳐 KAC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알고 있는 이들을 안타깝게 해준다.
KAC의 가장 큰 약점은 정치적인 중립 의무가 있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 아닌 비영리단체의 특성상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인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성원이 없으면 결코 홀로 설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동부 지역의 정치력신장단체인 유권자센터에 한인 로컬 기업들이 후원금을 보태는 모습과 비교하면 동부 한인의 정치적 자각과 서부 한인의 정치적 자각의 격차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KAC의 성장 후퇴는 결국 주류 정치계와 한인 사회를 연결해주는 한인들의 다리가 절단나는 꼴임에도 많은 한인들은 이를 스스로 자각하지 못 하고 있다. 주류 정치계에서 한인 사회가 두드리는 문소리에 귀를 닫고 있는 징후는 지난 해부터 감지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미국 경제는 22일 증시에서 무려 500포인트 이상 한꺼번에 빠지기도 하는 등 경제공황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다. 이민 개혁안은 올해 대선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그 출구가 보이지도 않고 있는 형편이다. 이라크전은 어떤가. 한인 납세자들이 호주머니 털어서 지불한 돈으로 벌인 전쟁이지만 수렁 속에서 빠져나올 묘책조차 정부는 없는 듯하다.
모국에 대한 열렬한 애정과 관심을 탓하는 이는 없다. 다만, 우리가 주인으로 살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의 권리를 행사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우리가 낸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 지 귀를 닫고 있는 우리의 모습은 큰 자성을 요구하고 있다. 당신은 미국인인가, 한국인인가? 양자택일의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미국인으로서, 한국인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챙기는 데 소홀하지만 않는다면 족하지 않겠는가.
이석호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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