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캘리포니아 조세형평국 3지국 위원선거에서 승리한 미셸 박 후보가 승리가 확정되자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지지자들의 박수를 받고 있다. 조세형평국 위원은 주정부 세무정책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이다.
거세지는 여성파워
미국에서 정치의 문은 여성에게도 똑같이 열려 있다. 이 때문에 선출직은 물론 임명직에서도 한인여성들의 활약과 파워는 오히려 남성을 능가할 정도다. 특히 한인남성의 경우 선출직에서 김창준씨가 연방하원의원이란 기록을 세웠다면, 여성들은 임명직에서 오히려 두 명의 장관급 고위직을 배출할 만큼 강세를 보였다. 이같은 배경에는 무엇보다 개인의 능력이 뒷받침되기 때문이지만 또다른 면에서는 아시안 여성에 대한 주류사회의 인식과 이미지가 남성에 비해 훨씬 긍정적이란 면도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주선 미셸 박·메리 정 활약 돋보여
웬디 그램·전신애씨 등 임명직 두각
한인여성들의 정치사는 197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록 눈에 띄는 선출직이나 임명직은 아니었지만 마리아 조(작고)씨가 오렌지카운티 공화당 대의원으로 활동하며 80년대 초까지 지역 정치권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선출직에서는 역시 하와이가 선두였다.
1982년 도나 머카도 김씨가 주하원의원(1998년에는 주 상원 진출) 선거에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재키 영(1990년 주 하원의원, 주 하원 부의장 역임), 실비아 장 룩(1998년 주 하원의원), 샤론 하씨(2006년 주 하원의원) 등 여성정치인이 줄줄이 탄생했다.
비슷한 시기였던 1980년대 초 LA 인근 몬테벨로에서는 김정숙씨(미국명 엘레나 차오)가 시 교육위원 선거에서 승리한 바 있다.
특히 재키 영씨는 마사 최 전 시애틀 시의원(1991년 첫 당선)과 함께 한인여성 정치인 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을 알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단순히 선출직에서 승리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갖고 있던 당내(두 사람 모두 민주당) 비중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재키 영씨는 주하원 부의장까지 역임하며 하와이 민주당을 움직였고, 마사 최씨 역시 비록 시의원이었지만 민주당 내에서는 상당한 입김을 가진 여성정치인 중 한명으로 손꼽혔다.
재키 영 전 의원의 활발한 대외활동은 자녀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장녀인 폴라 데니얼스(변호사)는 ‘물의 여인’으로 불리며 환경보호단체인 ‘힐 더 베이’(Heal The Bay)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LA시 공공사업위원회 커미셔너로도 활약중이다.
뉴욕 태생인 마사 최 전 시의원은 99년까지 두 번의 시의원을 지낸 뒤 3선 도전을 포기하고, 주 무역·경제 개발장관으로 자리를 활동하다 현재는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해외 도서관 건립사업을 총지휘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역시 미셸 박 현 캘리포니아 조세형평국 3지구 위원과 메리 정 하야시 주하원의원(18지구)을 빼놓을 수 없다.
공화당인 박씨는 대통령 아태자문위원으로 활약하는 등 공화당 내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정치권 진출이 예상됐던 인물로, 2006년 주정부의 세무정책을 관장하는 조세형평국 위원선거에 출마, 승리했다. 박씨의 자리는 엄청난 경제력을 가진 캘리포니아주 내 크고 작은 비즈니스들의 손익 분기점을 좌우할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갖고 있어 일반 주 또는 연방의원 탄생에 버금가는 요직으로 분류된다. 박씨가 처음 선거전에 뛰어들 때만 해도 대기업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으나, 사실상의 승리나 다름없는 공화당 후보로 확정되자 자발적으로 선거기금을 제공하고 나선 것도 그 위력을 반증하는 것이다.
특히 박씨의 성공 이면에는 공화당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남편 션 스틸 변호사의 외조가 큰 힘이 됐다. 또 현재 USC에 재학중인 박씨의 맏딸 샤이언양은 교내 공화당 모임 회장을 맡고 있어 온 가족이 당원이란 특이한 모습을 갖고 있다.
12세 때 오렌지카운티로 이민왔던 메리 정 의원은 ‘전국 아시안 여성건강위원회’ 설립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통해 얻은 전국적인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인여성 최초의 주하원의원 기록을 쌓았다.
이밖에 네바다주 4지구 주하원의원으로 지난해 재선에 성공한 프랜시스 오 앨런씨가 의정활동에 충실하며 정치력을 쌓아가고 있다.
임명직에서는 단연 하와이 이민 3세인 웬디 리 그램씨가 돋보인다.
1996년 대권도전에 나섰던 필 그램 연방상원의원의 부인이기도 한 웬디 그램씨는 1971년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전문가로, 한때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으며, 백악관 예산관리청 정부규제국장 등을 맡다가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장관직인 선물교역위원회(CFTC) 위원장까지 올랐다.
남편이 대선에 출마하자 선거운동에 앞장섰던 웬디 그램씨를 놓고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에서조차 “당락이 부인 손에 달렸다”고 말할 정도로 정치권에서 주목을 받았다.
3선이었던 할 도브 연방하원의원의 부인 신자 도브(한국명 신신자)씨 역시 1987년 네브래스카 연방하원 3선 의원이었던 남편을 돕다, 현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의해 상원인준을 거치는 저작권 관리위원장을 맡았다. 신자 도브씨는 특히 한국에서 대학을 마친 뒤 미국에서는 별도로 공부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주류 인사들을 사로잡았던 인물이다.
이밖에 현 부시 대통령에 의해 연방 노동부 여성국장에 임명된 전신애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미국에 유학와 정착했던 이민 1세. 뚜렷한 주관과 강력한 리더십으로 일리노이주 여성국장을 지냈으며 2001년 3월부터 차관보급인 연방노동부 여성국장으로 현재까지 근무중이다.
LA시에서는 단연 샐리 최씨가 돋보인다.
LA시정 각 부문을 두루 섭렵하다 2006년 11월 안토니오 비라아이고사 시장에 의해 재무담당 부시장에 전격 기용된 최씨는 브라질 이민자 출신으로 70억달러에 달하는 시 재정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이밖에 한인사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셸 리씨는 현재 백악관에서 정책관련 업무를 맡고 있으며, 이에 앞서 얼마전까지는 뉴스의 인물이었던 칼 로브 밑에서 보좌관으로 일했다.
캐리 현씨는 1997년 연방 교통부 언론담당관으로 임명돼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이에 앞서 캐슬린 안(한국명 안경숙)씨는 1998년 민주당 전국위원회 아태 디렉터라는 막중한 역할을 성실히 소화해 내기도 했다.
또 화교인 줄리 사씨는 1991년 풀러튼 시의원에 당선된 이후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 현재는 중국에서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번에 언급된 인물 외에도 다수의 한인 여성들이 시정부 등에서 시의원 또는 교육위원, 커미셔너 등으로 활약하며 한인정치력 신장에 일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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