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8,000만달러를 들여 만든 영화 ‘골든 컴퍼스’.
밀턴의 ‘실락원’에 바탕 둔 방대한 3부작
교회는 물론 신마저 비판한 무신론적 세계관
지난 7일 개봉한 ‘골든 컴퍼스’는 ‘반지의 제왕’으로 히트를 친 뉴라인 시네마가 1억8,000만달러를 들여 내놓은 또 하나의 팬터지 대작이다. 필립 풀먼이 쓴 ‘다크 머티리얼’(dark material)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 이 책은 출간 이후 지금까지 반기독교 논쟁에 휩싸여 왔다. 논쟁의 실체를 살펴본다.
‘골든 컴퍼스’의 무대는 겉보기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비슷하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평행 우주’(parallel universe)다. ‘평행 우주론’은 우주는 하나가 아니라 무한하다는 가설로 순간순간 선택이 이뤄질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우주가 탄생한다는 이론이다.
어쨌든 이 소설 여주인공 라이라 벨라카가 사는 세계에도 런던이 있고 옥스퍼드 대학이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동물 모양의 ‘대먼’(daemon)이 따라다닌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 대학에 맡겨져 자란 라이라는 어느 날 우연히 벽장 속에 숨어 들어갔다가 자신의 삼촌이자 사회 주요 인사인 아스리엘 경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발견하고 이를 막는다.
아스리엘 살해 기도는 그의 ‘먼지’(Dust) 연구를 중단시키려는 가톨릭교회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아스리엘은 이 ‘먼지’가 다른 ‘평행 우주’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임을 증명하려 해왔는데 ‘평행 우주’의 존재는 가톨릭 교리에 위반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톨릭은 ‘먼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암살 기도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안 돼 런던 사교계의 실세이자 가톨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마리사 쿨터라는 여성이 옥스퍼드를 방문, 라이라를 조수로 채용하며 그와 때맞춰 곳곳에서 아동 유괴 사건이 발생한다. 납치범들에 의해 끌려간 아이 가운데 라이라의 친구 로저가 있었다. 로저의 유괴 사실을 안 라이라는 어떤 일이 있어도 친구를 구해내기로 맹세한다.
라이라는 옥스퍼드를 떠나기 전 학장으로부터 황금 나침반 모양으로 된 ‘진리 탐지기’(alethiometer)를 선물 받는다. 복잡한 사인으로 이뤄진 이 장치는 어떤 질문에도 정답을 내놓지만 그를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수련과 가이드북이 필요하다. 그러나 라이라는 본능적으로 사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 탐지기는 소설 전편에 걸쳐 라이라의 길잡이 노릇을 한다.
쿨터의 집에 머물고 있던 라이라는 쿨터야말로 ‘고블러’(Gobblers)라고 불리는 납치 조직의 두목이라는 사실을 알고 집을 뛰쳐나오나 이들에 의해 잡히는 처지에 놓인다. 그 때 ‘집션’(gyption)이라고 불리는 집시 일당에 의해 구조된다. 나중에 라이라는 쿨터가 사실을 친엄마며 아스리엘은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집시의 비밀 은신처에 몸을 숨긴 라이라는 납치단이 아이들을 북극 근처로 끌고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집션과 함께 배를 타고 노르웨이로 간다. 그 동안 라이라는 마녀들의 족장 세라피나 페칼라, 비행선을 모는 텍사스 출신 탐험가 리 스코어스비, 인간처럼 말을 하는 곰 부족의 왕자 이오렉 버니슨 등을 만난다.
남치된 아동들을 구출하려다 오히려 납치돼 버니슨의 왕좌를 찬탈한 곰의 왕 라그나 스툴루슨 앞으로 끌려간 라이라는 스툴루슨을 꼬여 버니슨과 결투를 벌이게 하며 이 싸움에서 버니슨이 이기는 바람에 그는 왕좌를 되찾고 라이라는 든든한 원군을 얻게 된다. 이어 아이들이 갇혀 있는 볼방가에 도착한 라이라는 집션의 도움으로 이들을 구출하고 아버지를 찾아 다시 길을 떠나 결국 만나지만 아버지는 다른 ‘평행 우주’로 떠나가고 만다.
아버지를 찾아 다른 우주로 떠난 라이라와 여기서 만난 남자 주인공 윌 패리가 겪는 모험담이 2편인 ‘보물 칼’(The Subtle Knife)이며 가톨릭이 우주의 최고 권위로 믿고 있는 신을 상대로 아스리엘이 일으킨 반란이 어떻게 마무리되는가를 그린 작품이 3편 ‘호박 망원경’(The Amber Spyglass)이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기독교의 반발을 산 것은 단지 권위주의적인 가톨릭을 공격하는 차원을 넘어 절대자인 신마저 오래 전에 이미 천사 메타트론에게 권좌를 빼앗기고 무기력한 늙은이로 전락한 후 나중에 힘없이 바람에 실려 흩어지는 존재로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풀먼 자신도 2001년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스로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흔들려 한다”고 말했다.
때문에 영화화된 작품은 가톨릭이나 신 같은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고 모든 권위주의적인 조직을 공격하는 식으로 적당히 얼버무렸다. 이에 대해 무신론주의자나 표현의 자유 옹호자들은 영화 제작사가 종교 단체 굴복했다고 분노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 연맹은 지난 10월 이 영화를 본 아이들은 기독교를 비하하고 무신론을 찬미하는 이 책을 읽게 될 것이라며 영화를 보이콧 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가톨릭이라고 모두 이 영화를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1월 미 가톨릭 주교 회의 영화 담당국은 부모들이 이 영화를 보이콧하는 것보다 아이들과 함께 철학적 문제를 토론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이 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반응은 반반이다. 특수 효과는 뛰어나지만 원작의 맛을 살리지 못했다는 얘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지만 시카고 선 타임스의 로저 에버트 같은 이는 “‘반지의 제왕’이라 ‘나니아 연대기’보다 뛰어난 깊이 있는 팬터지”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1편은 전체 스토리의 서막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만으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은 무리다. 2편과 3편은 2009년과 2010년 나올 예정이지만 이것이 현실화되느냐는 1편의 성공에 달려 있다.
오래 논쟁 계속될 작품
밀턴의 ‘실락원’(The Paradise Lost)에 근거를 둔 풀먼의 3부작은 수많은 우주를 오가며 천사와 천사, 마녀와 마녀, 인간과 인간이 서로 싸우는 1,300 페이지 가까운 분량의 광대한 작품이다. 한 때 최고위 천사였던 사탄의 반란을 주제로 한 ‘실락원’은 대표적인 기독교 문학 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으나 밀튼이 실은 사탄의 옹호자였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영국 낭만파 시인의 하나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밀튼이 천사와 신을 이야기 할 때는 족쇄에 묶인 듯이, 악마와 지옥을 이야기할 때는 자유롭게 쓴 것은 그가 진정한 시인이며 자신도 모르게 악마의 편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바 있다. 풀먼은 블레이크의 입장에서 신과 싸우는 아스리엘 편을 들고 있다. 그렇다고 아스리엘이 선하기만 한 존재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가 낳은 친자식 라이라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평행 우주’ 탐험이라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고한 아동의 생명을 희생시킨다.
처음 악의 화신처럼 나오는 쿨터도 나중에는 딸 라이라의 생명을 보호하며 아스리엘과 함께 메타트론과 싸우다 목숨을 바친다. 이처럼 복잡다단한 구성 때문에 단순히 흑백 논리로 작품을 논하기는 어렵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논란이 그치지 않을 문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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