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못 살겠어. 재미도 없고. 그래도 어쩌겠어. 아내하고 애들이 여기 사는 게 좋다는데...”란 푸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전직 공무원인 40대 후반의 한인 남성은 미국 이민 약 2년차인 새내기 이민자다. 나이 들어 이민 온 탓에 언어 장벽도 만만찮고 한인타운 언저리를 벗어나기 힘든 생활환경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탓이다.
한국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가장으로서 아버지의 위치가 이민 가정에서는 흔들흔들 거린다. 돈을 버는 가장은 있지만 자녀들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권위가 삭제된 가장이다. 영어로 된 우편물만 날아와도 당황하고, 집안에 무슨 문제가 생겨도 어디로 연락을 해야할 지 몰라 막막해 하는 것이 새내기 이민 가장이 부딪치는 권위 실추의 출발점이다.
영어에 익숙지 않은 아버지가 우편물을 들고 문의를 구하는 상대는 가장 가까이 있는 자녀들. 친구도 친척도 없는 미국에서 기댈 상대는 가족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단한 고지서의 내용도 몰라 쩔쩔매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자녀들의 마음은 복잡하다. 무섭기만 하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은 아버지에 대한 은근한 무시를 유발하기도 하고 “우리 아버지가 어떻게 이런 것도 모를까?”하는 당혹스런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고 1때 미국으로 이민 온 40대의 한 한인 변호사는 “산 같던 아버지가 미국에 온 후 점점 초라해지는 데 참 바라보기 괴롭더라”고 털어 놓았다. 한국에서 쌓아온 아버지의 권위가 언어 장벽에 가로 막혀 산산 조각 나버린 셈이다. 자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아버지는 스스로 위축되고 ‘부권(父權)’을 행사하려는 의지마저 잃어버린 채 ‘돈 버는 가장’ 이상의 지위를 회복하기 쉽지 않다.
추락한 사회적 지위도 부권 상실에 한몫하고 있다. 한국에서 아침이면 깨끗한 하얀 와이셔츠에 양복을 입고 출근하던 아버지대신 헐렁한 면바지에 ‘잠바때기’를 입고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대조적인 이미지는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도 바뀌었음을 일러준다.
이민자 가정의 겉보기 등급은 ‘단란, 화목’이다. 한국보다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이 많고, 이민사회의 특성상 가족끼리 똘똘 뭉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겉보기 등급의 이면을 한 꺼풀 베껴내면 무너지고 있는 부권이 절대등급의 어두운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민 2년차의 그 남성은 전화를 끊기 전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래도 어쩌겠어. 여기서 열심히 살아야지, 안 그래?”
오랜 공무원 생활 탓에 적응이 쉽지 않을 비즈니스에 적응하기 위해 오늘도 그는 자바 시장을 누비고 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로 딱히 구분 지을 수는 없지만 부권을 상실한 아버지에 대한 따스한 관심이 요구되는 연말이다.
이석호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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