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태왕사신기’가 마지막 회를 남기고 있다. 3년의 시간과 400억의 제작비로도 부족했던 팬터지 사극이다. 공중파 TV 드라마지만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로 이어지는 김종학·송지나 콤비에 한류스타 배용준이 가세해 첫 방부터 시청자들이 도끼눈을 떴다.
그리고 24부작이 완결되는 지금 ‘태왕사신기’는 한풀 꺾인 한류 열풍을 다시 일으킬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한다. 탄탄한 대본과 HD 16:9 화면을 꽉 채우는 영상의 스펙터클, 돌비 5.1 사운드까지 영화를 방불케 하는 쥬신 제국의 힘이다.
올해 한국 영화계는 ‘칸의 여왕’ 전도연이 없었다면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지난 아메리칸 필름마켓에서 한국 배급사들은 판매보다 구매에 더 열을 올렸다. 한국 영화는 재고로 썩어 가는데, 수익률 좋은 외화만 사들인다고 비아냥거렸지만 그게 영화계의 현실인 걸 어찌하랴. 한국 영화의 국내시장 점유율이 떨어져 외화 구매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나, 영화 점유율이 떨어지는 건 한국 영화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요즘 영화의 위력은 드라마의 파급력과 인터넷의 가격 경쟁력에 의해 무력해지고 있다. 또 대형 TV 모니터가 안방을 차지하면서 극장이라는 공간이 점점 의미를 상실해가고 있다. 할리웃은 3D(입체) 영화를 하나의 대안으로 내놓았지만 안경을 쓰고 2시간 쳐다보면 두통이 오는 3D가 영화의 위력을 되찾을지는 의문이다.
이에 반해 21세기의 TV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모습으로 유혹한다. 좁쌀 크기 반점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고화질 HD에다가 화면을 꽉 채우는 영상미까지 발휘한다. 그럼에도 TV는 여전히 영화 아래로 취급받는다.
TV 드라마에 대한 극찬은 늘 ‘영화 같은 화면’이다. 드라마로 유명해진 배우들이 첫 영화를 찍고 “이제 드라마는 안 찍어요. 저도 영화배우에요”라고 하는 말도 종종 들린다. 고액의 드라마 출연료를 받고도 드라마 홍보할 여유가 없다던 배우가 영화제 레드카펫을 향해서는 비속에서도 드레스를 챙겨 입고 달려간다. ‘영화인’의 배지를 달고 싶어서다.
6년 전 영화하는 친구들이 안주거리로 주고받던 말이 있었다. 한국 젊은이들 중 절반이 영화 시나리오를 들고 기웃거리고, 영화판에서 밀려난 나머지 절반은 드라마 대본을 들고 방송국을 찾아다닌다는 것. 영화든 드라마든 선택한 바에 최선을 다한 그들이 빛을 발하는 지금 TV에 대한 천대를 벗을 시기가 됐다.
영화는 고급스러운 것, TV는 천한 것이라는 인식은 첨단기술과 다양한 장르로 확장되고 실험되는 TV라는 미디어에 대한 고민을 정체시킬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영화와 TV는 경쟁상대가 아니다. 각자 다른 방식과 다른 가치로 존중받아야 하는 매체들이다.
하은선
H 매거진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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