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 연말에 기부를 조금 하고 싶은 데 어디가 좋겠어요?”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종종 걸려오는 전화들이 있다. 기부를 하고 싶은데 도움이 필요한 곳을 알고 싶다는 내용이다. 나눔이 있어 따뜻한 계절이며 언제나 찾아오는 반가운 전화들이다.
금전적 기부만이 아니다. “빵이 필요한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말해달라”며 따듯한 손길을 내미는 베이커리 업주도 있다. 어떤 단체는 일일 봉사라도 하겠다며 시간 도네이션 할 곳을 물어오기도 했다. 우리 주변을 조금만 돌아보면 나눔과 봉사,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선교회나 재활센터 등 한인 비영리단체들을 적잖게 만날 수 있다.
최근 취재차 몇몇 봉사단체에 전화를 걸었다. “늘 도와주시는 것이 감사하죠. 그런데 어떻게 또…. 있으면 좋긴 하지만…”이라고 말꼬리를 흐리며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는 속사정을 내비쳤다.
히터가 고장 났지만 수리비용이 없어 여섯 가정이 매일 밤 찬 바람에 오돌오돌 떨고 있다는 셸터. 스스로 노숙자를 위한 찬양팀을 만들겠다는 아이들의 꿈을 지지해주고 나니 재정난에 봉착한 선교단체. 가정폭력 피해여성과 자녀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기 위해 후원을 기다리는 곳 등 하나같이 따뜻한 한인들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약과 알콜 중독 청소년들이 머물고 있는 재활센터는 연말이면 오히려 쓸쓸해진다고 했다. 그곳에 있는 자녀들을 부끄럽게 여겨 멀찌감치 주차를 하고 오는 가족들, 아예 들여다 보지도 않는 부모들, 그곳을 도우면 자신의 자녀가 관련이 있다고 오해를 살까봐 나눔의 손길을 뒤로하는 어른들. 그로 인해 또 한번 상처받는 청소년들을 보고 있으면 차라리 연말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관계자의 솔직한 심정에 기자의 가슴도 꽉 막혀왔다.
반면 한인사회 다른 곳에서는 연말 송년회와 동창회로 분주하고 들뜬 모습이다. 예년 보다 더 재미있고 특별한 송년모임이 될 것이라며 임원단들이 활발한 홍보활동을 펼치고 있다. 엇갈린 두 가지 표정 속에서 올해는 사랑의 나눔을 실천하는 동창회나 송년모임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소리 없이 남을 돕는 곳에서 꼭 만나게 되는 한 비즈니스 우먼이 있다. 그는 돈도 물처럼 자연의 일부로 생각한다고 했다. 물이 돌고 도는 것처럼, 돈도 돌고 돌아 자신에게 조금 더 많이 왔을 뿐이라고. 이 것이 메마르고 상처받은 땅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또 다른 길을 만드는 것이 자신이 할 일이라는 설명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눔의 계절, 소외된 이웃이 생각나는 때다. 올해는 모임의 진정한 의미를 ‘나눔실천’ ‘이웃사랑’에 두는 것은 어떨지. 한인사회 한 사람 한 사람 또는 단체나 모임을 통하여 메마른 땅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일을 경험하는 연말이 되길 기대해 본다.
김동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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