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이 뜸하던 친구에게서 회사로 전화가 왔다. 기자에게 새로운 별명이 생겨서 알려주려고 전화했다는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친구가 만든 별명은 ‘사기꾼 Slasher’라고 했다. Slash는 ‘칼로 베다’라는 뜻이 있느니 즉 ‘사기꾼 제거자’라는 뜻이다.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더니 “너는 매일 사기꾼 아니면 사기당한 사람 기사만 쓰니까 그렇지”라고 말한다.
지난 한 달동안 내가 쓴 기사의 제목을 되짚어봤다. ‘100만달러 환치기 송금업자 유죄’ ‘수표 돌리기 400만달러 사기’ ‘유령회사 만들어 거액사기’ ‘나도 모르는 사이 융자신청 하다니’ 등등. 친구가 ‘사기꾼 제거자’라는 별명을 지어줄만 하다.
그렇다고 사명감에 불타서 사기꾼을 제거하기 위해 발로 뛰며 취재를 한 것도 아니다. 수사 기관의 조사를 받고 유죄가 드러나 공식 발표된 사례만 섰는데도 사기와 관련된 기사만 쓴 것처럼 돼버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연방 법무부의 공보관과 통화를 하다 보니 아예 공보관의 전화번호가 내전화기에 스피드다이얼로 입력돼있다. 공보관도 “한인 사기사건이 많아서 혼란스럽다”며 “이번에는 어떤 사기꾼(Crook)을 취재하는지 정확히 말해 달라”고 농담을 할 정도다.
이민 생활이 오래된 한인들은 LA에는 한국에서 사기치고 도망친 사람들로 득실거린다고 말하고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 된 한인들은 LA 한인의 절반은 사기꾼이라고 말한다. 마치 LA가 한인사회 사기꾼 집합소가 돼버린 느낌이다. 한국에서 온지 얼마 되지 않으면 미국 실정을 몰라서 사기를 당하고 미국에 오래 살면 한국에서 수입된 신종사기에 당한다. 서로 물고 물리는 꼴이다.
금융사기 기사가 나가고 자신도 피해자라며 독자가 찾아왔다. 부동산 업자가 주택에 저당을 설정하는 방법으로 담보를 잡고 높은 이자를 주겠다고 해서 50만 달러를 빌려줬는데 이자도 못 받고 오히려 자신의 집에 저당이 잡혀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서류도 작성하지 않고 그렇게 많은 돈을 빌려 주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독자는 “이민 생활에서 믿을 곳이 없다보니 친절하고 매너 좋고 돈 잘 쓰고 똑똑해 보이는 사람이 강하게 신뢰감을 줘서 다들 믿고 돈을 빌려줘 나도 빌려줬다”고 말했다.
사기는 핵심이 있는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고 화려한 언변으로 상대방을 속이는 고약한 기술이다. 사기는 교묘한 방법으로 상대의 재산을 갈취하고 편취하는 지능적인 범죄다. 도덕성이 마비된 사기꾼은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자극해 피해자의 판단력을 마비시킨다.
산불로 타들어 가는 10월의 캘리포니아 산야를 보며 한인 사회는 사기로 타들어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1-2건의 대형 사기사건이 발생해 한인 사회가 화마가 휩쓸고 간 산야처럼 쑥대밭이 되고 사기 피해를 당한 한인들의 마음은 숯검정이 된다.
한인 사회의 사기사건이 하루 빨리 진화돼 기자도 사기(詐欺)와 관련된 기사는 그만 쓰고 독자들의 사기(士氣)를 높일 수 있는 기사를 많이 쓰길 기대해 본다.
김연신 /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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