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오늘, 지난 2년 동안 보지 못했던 한 학생이 찾아 와 빌려갔던 일본어 책을 돌려주었다. 영문과의 희곡 전공 학생인 그는 일본에 가서 영어를 가르칠 것이라며 폭넓은 경험을 하고 싶다고 했다. 미국을 한 번도 떠나 본 적이 없는 그는 외국여행을 상당히 낭만적으로 말했다.
물론 그를 격려해주었다. 젊어야 외국생활 적응도 더 쉽지 않겠는가. 나는 겨우 21살인 그에게 외국어를 배우는 것도 젊을수록 좋다고 했다. “여자는요?” 그 질문엔 그저 어깨를 움츠리며 손바닥을 보이는 제스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꼭 집어 뭐라고 말하기 힘들 때 보이는 동작, 그렇지만 실제로는 무엇이라 말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입 밖으로 안 내는 게 좋겠다고 작정한 그런 동작이다.
전 세계 수천년 역사를 통해 보면 남자들의 타국 여성과의 만남은 은총이기도 했지만 저주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성별 간의 힘도, 나라 사이의 힘도, 대개는 불균형한 경향이 있다. 이 두 불균형이 합쳐져 이중화하면 당연히 폭풍을 야기한다. 균형이 맞춰지면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와 같이 위대한 에너지가 생산되지만, 불균형이 너무 지나치게 되면 가장 비인간적인 짓들의 하나인 성 관광과 인질 식 성매매가 야기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한국남자들과 만나면 항상 두 가지 똑 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 “한국 음식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한국 여자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코 그냥 지나치며 하는 질문은 아닌듯 싶다. 대개 소주를 마시며 꺼내는 질문이지만 내 답에 상당한 관심을 기울인다.
음식 질문이라면 나는 쉬지 않고 말할 수 있다. 썩힌 홍어회를 먹은 다음 며칠 동안이나 코를 떠나지 않던 암모니아 냄새에 대해서. 그리고 그 냄새와 오래 썩힌 프랑스의 에파쓰 치즈 암모니아와의 비교분석도. 추어탕을 먹을 때의 미꾸라지의 깔깔함과 두부의 부드러움이 아주 특이하다는 것에 대해서도.
여자에 대해서는? 글쎄, 한편으론 음식에 대해 말하듯 쉬지 않고 말하고 싶지만 그걸 실천에 옮길 정도로 소주를 마셔 본 적이 없다. 사실은, 아무리 많이 마셨다 해도 결국 내 상상력을 동원하고 말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더 듣고 싶어 한다. “한국여자가 아시아에서 제일 예쁘다고 생각합니까?” “세계에서 제일 예쁜가요?” 미안하지만 “예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떤 나라도 미인 독점권은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결국 재미없는 얘기만 꺼내고 만다.
이런 얘기를 해준다. 2001년에 1960년대를 배경으로 만든 새 한국영화를 봤는데 이상하게도 그 영화 속의 여자들이 다른 영화에서 본 여자들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머리색이 자연스럽게 검었기 때문이었다. 내 눈엔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현대 여성들이 그다지 매력 있어 보이지 않는다.
처가 식구들과 서울 야경을 구경하다가 TV 드라마 찍는 곳을 지나던 얘기도 해준다. 배우 심혜진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차를 천천히 몰며 구경하다가 창문을 열었는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한 1분30초쯤 되었을까? 그녀가 살짝 웃었다. 평생 본 미소 중 가장 따뜻하고, 깊고, 가장 마음을 녹이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그 순간 차가 그 자리를 떠났고 그녀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학생은 분명히 금방 사랑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곧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또 금방 사랑하게 될 지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에게 행운을 빈다. 지독한 사랑의 암모니아 냄새도, 깔끄러움과 부드러움의 합성체도 모두 경험하길 빈다. 결코 술집에서 한 무리의 남자들을 앞에 놓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렬한 경험을.
케빈 커비 /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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