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가 “지난 25년중 미국 대중문화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극찬한 TV 드라마 ‘소프라노스’가 최근 에미상 최고작품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집안 가족과 마피아 ‘가족’의 상충된 요구 때문에 우울증을 앓는 마피아 두목을 주인공으로 다룬 소프라노스의 인기는 미국 최대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대부’, ‘굿펠라’ 등과 더불어 마피아가 미국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연방수사국의 집중 단속으로 마피아의 영향이 거의 사라져 가고 있지만 불과 20년전까지만 해도 특히 뉴욕과 시카고에서는 노조, 건설, 운송, 도박, 매춘, 복권 등 마피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뉴욕에서도 1943년 주대법관에 지명된 판사가 마피아 두목에게 ‘변치 않는 충성’을 맹세하는 대화가 도청돼 “뉴욕시에서 누구도 마피아의 승인 없이는 판사가 될 수 없다”는 소문이 확인됐었다. 마피아도 한 때는 영어를 못하는 이민자 커뮤니티를 등쳐 먹는 거리깡패 조직에 불과했는데 과연 어떻게 그렇게 엄청난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믿기 어렵지만 1919년에 제정된 금주령은 헌법 수정(제18조항)으로 채택될 만큼 기독교 보수세력은 물론 진보주의자들로부터도 폭넓은 지지를 받았었다. 당시 음주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여겨져 1869년에 금주당이 창당될 정도였는데 술을 범죄, 빈곤 등 각종 사회악의 근원으로 여긴 개혁자들은 금주법이 통과되면 범죄가 줄어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현실성을 무시하고 이상만 바라본 금주법은 과연 사람들의 음주습관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여전히 미국에서는 매일 100만 쿼트의 술이 소비되고 있었고 대신 법의 구속을 받지 않는 범죄조직들이 양조에서부터 밀수입, 배포, 술집 등 수십억달러 규모의 주류산업에 뛰어들었다. 갱단들은 깡패 뿐 아니라 트럭운전사부터 연예인들까지 수천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기 시작, 1929년에 전국 29개 갱단이 총회를 열어 전국적인 범죄 신디케이트가 조직되기까지 했다.
1925년 뉴욕의 한 범죄조직이 술 밀매로 거둔 수입만 최소 1,200만달러에 달했다고 한다. 이중 500만달러를 판사에서부터 말단 순경까지 뇌물로 바치고 400만달러를 마피아에서 순액으로 챙겼다니 그야말로 치안기관과 마피아는 파트너 관계였다.
‘숭고한 실험’(Noble Experiment)이라고 불린 금주법은 결국 1933년 헌법 수정조항 중 유일하게 폐지됐으나 이미 마피아는 미국 사회의 한 세력으로 자리 잡았고 무엇보다도 관공서가 부패의 소굴로 몰락되고 준법정신이 와해되는 유산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중동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킨다는 네오콘의 발상에서 비롯된 이라크 전쟁은 오늘날 제2의 금주법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전쟁 플랜부터 수행까지 현실성보다 이념을 중시한 이라크전이 결국에는 이라크와 미국에 어떤 후유증을 남길까.
우정아 /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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