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마주 앉았다.
무촌이라고 한다지만 바쁜 생활에 쫓기다 문득 돌아보면 눈 마주치고 고주알 미주알 속내를 들어내 본적이 언제인가 싶다는 그들. 그 이름 부부다.
그 부부들이 지난달 한인 교회가 주최하는 부부 세미나에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자녀들 걱정, 비즈니스 걱정 접고 오직 부부만의 이야기를, 부부만의 문제만을 틀어쥐고 2박3일간을 함께 했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 뭐 그리 할 얘기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할까 싶었지만 세미나는 국회 청문회보다 더 진지하고 치열했다. 그만큼 이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시간이 절실했던 것이다.
한인사회에서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는 비극적인 일가족 참사나 가정불화의 문제도 알고 보면 밑바탕에 이 부부 갈등을 복선으로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부부 문제란 인종과 국가를 떠나 유사이래 가장 뜨거운 이슈이며 결혼서약을 하는 순간부터 피할 수 없는 업보여서 다들 ‘쑥스럽게 부부 문제로 세미나(혹은 상담)씩이나…’ 하고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남의 나라 땅에서 부부란, 가족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숙제다. 말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최우선이 되다 보면 부부란 이름은 희생되어야 할 0순위다. 먹고 사는게 급한데 이해해 주겠지, 말하지 않아도, 다독거리지 않아도 이심전심 내 맘 다 알아주겠지 하고 살다보면 부부사이는 루비콘 강만큼이나 벌어져 있다. 젊은 부부들이라고 해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양보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아내도 남편도 무조건 내편이고 내가 원하는 데로 해주겠지 하는 이기적인 생각이 고단한 일상 속에서 싸움 잘날 없다고 고백한다.
따지고 보면 행사 주최측은 그저 멍석만 깔아준 셈이다.
누가 꼭 집어 말해주지 않아도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내 아내가, 내 남편이 어디가 아프고 불편한지 참석자들은 너무나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다만 이야기할 타이밍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를 몰라 누군가 조금만 도와줬으면 하고 기다릴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문제는 멍석이다. 한인사회가, 교회가, 한인 단체가 보다 더 많은 부부들을 위해 멍석을 깔아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의 나라 선교도 좋고, 본국 불우 이웃을 돕는 것도 좋고, 교회증축과 타운단체 단독건물 매입에 돈을 쓰는 것도 다 좋다. 그러나 우리가 다음세대에 물려줘야 할 건강한 한인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건강한 가정이 우선 아니겠는가. 커져만 가는 교회 덩치에 맞게, 날로 성장하는 한인사회 경제력에 걸맞는 다양한 전문 상담기관과 카운셀러, 세미나 등 부부문제를 지원하기 프로그램들이 모색돼야 한다.
안방 이야기가 담장을 넘으면 망신이라는 것도 이젠 옛말이다. 속으로 곪아 극단적인 사회문제로 불거지기 전 이웃과 공공기관이 시기 적절하게 이를 도와줄 수 있는 사회, 바로 21세기가 원하는 열린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아닐까.
이주현 / 특집2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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