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 하나. 출석교인 수가 약 500명으로 한인타운에 위치한 한 교회. 8월초부터 서로가 담임목사라고 주장하는 두 목사가 번갈아 가며 강단에 선다. 교인도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두 집단으로 나뉘어 자신이 지지하는 목사가 설교하는 예배에 참석한다.
상대방 예배를 방해는 하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9월로 예정된 첫 히어링이 열릴 때까지 두 집단간 폭력이 없어야 한다는 판사의 명령 때문에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우스갯소리 하나. ‘비행기 타고 올 때는 집사님, 비행기 타고 갈 때는 목사님.’ 허위 학력 파문에 개신교도 바람 잘 날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미국에서 쉽게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는 현실을 비꼬는 말이다.
‘사이비 신학교’만 탓할 게 아니다. 미국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복음주의 신학교에 한국어로만 진행되는 강좌가 개설된 건 무엇을 뜻하는가. 이 학교에서 한국인 학생들이 다 빠지면 교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은 그저 농담일 뿐일까.
불교라고, 천주교라고 다른가. 어렵게 모셔온 주지 스님이 취임 몇 달만에 짐을 싼 사찰. 신자들과 이어진 갈등 끝에 임기를 못 채우고 한국으로 돌아간 한 본당 신부.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 상황”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종교계 내 다툼이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다툼이 종교계에만 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문제는 다툼과 반목 자체가 아니라 발전의 속도이다. 민주화를 타고 정치, 경제, 사회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 동안 ‘성역’이라고 세상의 충고를 외면하던 종교계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런 종교계의 후진성을 탓하는 것이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8월31일 웹사이트에 올린 칼럼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 활동을 벌이는 한국인이 19세기 미국의 선교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칼럼은 “미국 교회는 19세기에 전 세계로 독립적 전도 방식으로 선교사를 보냈고 비판을 많이 받았다”며 “한국 교회는 현재 미국 주류 교계에서 거의 쓰지 않는 19세기 방식으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고 썼다. 한국 개신교의 후진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불교계도 마찬가지다. 한 60대 스님은 “마흔 넘은 나이에 출가했더니 법랍이 적다고 얼마나 깔보는 지 힘들었다”고 말했다. 세상이 민주주의와 투명성, 평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가는 데 비해, 불교계가 관행, 승습 등에 묶여 자체 발전의 동력을 잃고 있는 걸 보여주는 말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재정을 공개한 것은 세상이 요구하는 투명성을 부합하려는 최소한의 몸짓이다. 세상에 비하면 한참 늦었지만 그래도 저평가 되서는 안 되는 시도다.
세상을 쫓지는 않아도, 최소한 세상에 뒤쳐지지는 않는 종교계. 이것이 세상이 종교계에 원하는 최저 눈높이가 아닐까.
김호성 / 특집2부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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