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김병현(28)이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로 이적했다. 말린스에서 방출공시된 것을 D백스가 픽업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한 팀에서 쫓아낸 선수를 다른 팀에서 주워간 것. 하지만 한국은 물론 대부분 미주 한인언론들도 김병현이 말린스에서 쫓겨난 사실은 적당히 얼버무리고 그를 D백스가 픽업한 사실에만 포커스를 맞춰 꿈보다 더 그럴듯한 해몽만 잔뜩 늘어놓고 있다. 전혀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의식에 철저하게 투철한 나머지 기자라는 프로페셔널로서의 위치를 망각한 것인지 아리송하다. 아마 두 가지가 반반씩 섞여서 나온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우선 이 칼럼은 김병현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다. 지금 여기서 문제를 삼는 것은 김병현 이적을 보도하는 한국언론들의 지극히 일방적이고 자아도취적인 보도행태들이다. 한마디로 김병현이 왜 말린스에서 방출됐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말도 없다. 뛰어났다곤 할 수 없어도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을 기록중이던 김병현이 트레이드도 아니고 그냥 쫓겨났는데 그 이유를 추정하는 기사조차 구경하기 힘들다는 것은 뭔가 이상하다.
지난 1일 경기에서 김병현이 커리어 최다 10삼진과 통산 50승을 거두자 한인언론들을 일제히 잘했다고 요란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김병현은 그날 사실상 말린스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경기 기록만 봐도 한국 언론이 떠든 것처럼 50승 달성 축하파티를 열어줄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삼진을 10개를 잡았지만 포볼도 6개나 내주며 6회도 못 넘긴 경기에서 공을 120개 이상 던졌다. 다음 날 본보에는 김병현이 “팀에서 인심은 잃었을 ‘나 홀로 피칭’을 했다”는 기사가 나갔고 그 관측은 바로 다음 날 김병현의 방출로 입증됐다. 물론 대부분 한인언론들은 김병현이 “삼진쇼로 통산 50승 고지에 우뚝 섰다”고 대서특필하기에 바빴다.
그런데 그들 표현을 빌리면 그렇게 잘 한 선수가 갑자기 쫓겨났는데 이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궁금하지 안나보다. 방출된 후 D백스가 픽업한 사실에만 포커스를 맞춰 “D백스가 플레이오프를 위한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느니 “포스트시즌을 위해 ‘찜’ 했다”느니 등등 제멋대로 아전인수 격 해석만 늘어놓기 바쁘다. 이 정도면 기자 그만두고 김병현 대변인으로 취직해도 될 것 같다. D백스가 픽업의사를 밝힌 뒤 48시간 내에는 말린스가 방출을 번복하고 지푸라기 하나라도 건지기 위해 트레이드를 시도할 수도 있었는데 왜 그 것조차 안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것 같다.
한 신문의 기사는 “김병현이 2001년 애리조나 우승의 유일한 주역”이라며 “애리조나는 우승을 하기 위해 김병현의 경험이 필요했다”면서 ‘추억 마케팅’이란 용어까지 들먹였다. 그해 월드시리즈에서 김병현이 이틀 연속 어떤 경험을 했는지 벌써 까맣게 잊어먹은 모양이다. 심지어 이적 후 직접 인터뷰를 하고도 말린스에서 방출된 이유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조차 안 하는 기사를 보면 어이가 없다.
김병현의 다음 에피소드는 별로 예측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더 뻔한 것은 한국 언론의 반응이다. “김병현 죽이기”나 “김병현 때리기” 같은 제목들이 벌써 눈앞에 떠오른다.
이규태 <스포츠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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