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눈뜨자 마자 컴퓨터의 전원부터 켠다. 간밤에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와 관련해 좋지않은 소식이 전해진 것 아닌가 하는 걱정스런 마음에서다. 배형규 목사가 살해됐다는 비보가 날아든 것이 LA시간으로 이른 아침이었던 까닭에 일어나자 마자 컴퓨터를 열어 보는 마음은 괜히 긴장된다. 다행히 나쁜 소식이 없으면 가슴을 쓸어 내리지만 사태 해결에 전혀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탈레반에 의한 한국인 피랍사태가 보름을 넘어서면서 LA한인들도 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정부가 사태해결을 위한 카드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모두를 무력감으로 몰아 넣는다. 특히 미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미국정부에 사태 해결과 관련한 영향력을 전혀 행사 할 수 없는 현실이 이런 감정을 더욱 부채질한다.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이 이럴진대 인질 가족들의 고통은 어떠할까. 사태 발생 후 들려오는 소식들에 일희일비하며 가슴 졸여온 가족들은 감정적으로 한계에 달한 것 같다. “피도 눈물도 다 말랐다”는 절규가 이런 패닉상태를 보여준다. 인질 가족들의 감정적 고통이 인질들 수준과 거의 같다는 진단이 틀리지 않아 보인다.
인질사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돼 나갈지 알 수 없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해도 인질들과 가족들의 정신적 상흔은 오래 지속될 것이 확실하다. 정신과전문의들이 흔히 ‘트라우마’로 진단하는 이런 증세는 전쟁이나 이번 대규모 인질사태 같은 생명을 위협하는 극단적 상황에 직면한 후 겪는 정신적 장애이다.
정신과 전문의 수잔 정 박사는 “이런 상황에서 인질과 가족들은 심리적으로는 불안감, 신체적으로는 오히려 민감해지는 고양 증세를 보인다”며 심해지면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여기는 ‘해리 현상’까지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9.11 테러 발생 후 미국인들의 절반 가량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했으며 특히 사건 발생지인 뉴욕 시민들은 ‘집단적 트라우마’ 증세까지 보였다. 불안감으로 잠을 못 이루고 환청과 환각 등이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며 감정 표현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아프간 인질들과 인질 가족들 역시 ‘트라우마’로 상당 기간 고통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 ‘트라우마’는 그리스어로 ‘상처’를 뜻한다. 상처는 따스히 어루만져 주어야 낫는다. 지금은 비록 안타깝게 인질사태를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무기력한 상황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 그것이다.
인질사태가 일단락 된 후 그동안 감내하기 힘든 고통을 받았을 인질들과 가족들에게 LA에서 진실된 마음이 담긴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많이 보내 준다면 이들이 상흔을 극복해 나가는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루 속히 남은 인질들이 무사히 가족 품으로 돌아와야 할 텐데 좋은 소식은 언제나 들려 올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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