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마 빈 라덴이 살아 있다면 월드컵 기간 동안 무엇을 할까. 세계 수십억 축구팬들처럼 TV를 통해 월드컵 경기를 지켜볼 것이다. 한국이 월드컵 4강의 꿈을 이룬 서울 월드컵 때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내용이다.
9.11 테러의 배후인 빈 라덴도 축구팬이라는 내용이다. 빈 라덴은 1994년 런던에 3개월 동안 머물 때 네 번이나 프리미어 리그의 아스날 팀 경기를 보기 위해 축구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아들을 위해 아스날 브랜드가 든 기념품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고.
“세계화에 가장 먼저 성공한 것은 축구다.” 많은 문명 비평가들이 하는 말이다.
빈 라덴 같은 이슬람 근본주의자에, 테러리스트도 축구 팬이다. 티베트 오지의 어린이들도 볼 대신 깡통을 차면서 축구를 즐긴다. 태국 방콕의 한 불교사원에는 영국의 축구우상 데이빗 베컴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다. 현대의 종교다. 다인종 사회에서는 ‘멜팅 팟’의 촉매제다. 계층, 국가, 인종, 이념의 벽을 넘게 하는 문명의 에너지다. 군중을 움직이는 힘이다.
1997년 이란에서 축구가 사건을 만들었다. 98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놓고 호주와의 경기에서 승리하자 수 천 명의 여인들이 강요된 전통복장인 차도르를 벗어 던진 것이다.
회교혁명체제다. 그 서슬 퍼런 당국의 경고를 무시하고 남녀 할 것 없이 축제에 빠져들었다. 축구혁명이 시작된 것으로 이란 지식인들은 보았다. 체제가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2005년 3월30일 북한 평양에서 한 소동이 일어났다. 월드컵 진출권이 걸린 북한과 이란의 경기가 북한의 패배로 끝나자 수만을 헤아리는 북한 관람객들이 폭도로 변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통제된 사회에서 벌어진 군중소요. 그 희귀한 사태에 전 세계가 주목을 했던 것. 이번에는 이라크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역시 축구 때문이다.
이라크 팀이 아시안컵 대회 4강전에서 한국을 승부차기로 간신히 눌렀다. 그리고 맞이한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시아파, 수니파, 쿠르드족, 심지어 터키계 까지 포함됐다. 그 ‘일레븐’이 하나가 돼 이라크 사상 처음 국제대회 우승의 기록을 세운 것이다.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이 그토록 집착하던 ‘축구를 통한 영광’을 이라크는 내란 상태에서 이룩한 것이다.
사람들이 거리로 뛰어나왔다. 이라크 국기가 내걸렸다. 시아파, 수니파가 따로 없었다. 각 정파들도 싸움을 일시 멈추었다. 축제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다. 축구로 인해 이라크는 뭔가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것이다.
“축구는 평화의 상징이다. 테러의 공포를 잊게 하고 전쟁을 멈추게 하니까.” 누가 한 말인가. 그 말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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