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프랭클린은 ‘첫 번째 미국인’으로 불린다. 형의 학대에 견디다 못해 빈털터리로 집을 나와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것도 그렇고 어느 정도 돈을 번 다음에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기울여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이상적인 미국인 상으로 남아 있다.
외교관과 과학자, 저술가로 유럽에 미국인으로는 처음 이름을 날렸을 뿐 아니라 소방대를 조직해 불이 날 때마다 화재 진압에 앞장섰고 도서관을 세워 지식 전파에 힘썼으며 미국인들이 안전하고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한 프랭클린 스토브를 발명한 것도 그다.
그가 남긴 수많은 업적 중 하나가 우체국 신설이다. 들쭉날쭉했던 우편 체계를 바로잡아 식민지 어디 건 싼 요금으로 정확히 편지가 배달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현 연방 우정청의 모체인 USPS가 제2 대륙회의 행정령으로 필라델피아에 세워진 것이 1775년이니까 그 역사가 현 연방 정부보다 오래된 셈이다.
연방 헌법은 의회로 하여금 우편 전담기구를 세우도록 규정, 1792년에는 우편부가 탄생했다. 당시 우편부 수장은 장관급으로 내각의 일원이었으며 마지막이기는 하지만 대통령 유고시 승계권도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71년 기구개편으로 우정청(USPS)으로 바뀌었으며 승계권도 잃게 됐다. 현재 우정청은 국방부와 월마트 다음으로 많은 직원을 채용하고 있으며 운행 차량 수만 26만대로 미국에서 가장 많다.
한 때 미국 내 우편물 배달 독점권을 갖고 있던 우정청은 1979년 연방 의회가 속달 우편물을 여기서 제외하려하자 자체 법규를 통해 비속달 우편물의 사적 배달을 허용했다. 이를 계기로 탄생한 페덱스(FedEx) 등 민간 기업과 이메일의 보편화로 우정청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2~3년마다 툭하면 우표 값을 인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1863년 3센트이던 편지 배달요금은 90년 이상 2~3센트 사이를 오르내리다 1958년 처음 4센트대로 올라섰다. 그 후에 5년 뒤 1센트, 다시 5년 뒤 1센트 오르더니 70년대 들어서는 2~3년마다 올리기 시작, 지난 40년 16차례나 올렸다. 같은 통신수단인 국제 전화요금이 80년대 초 분당 3달러에서 지금 수 센트로 내린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다.
우표 값은 어째서 이처럼 오르기만 하는 것일까. 근본적인 원인은 독점기업이 갖는 무능과 나태에 있다. 아무리 장사를 잘 해봐야 자기 돈도 아니고 적자가 나면 우표 값을 올리면 되니까 능률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할 아무런 인센티브가 없는 것이다.
우정청이 이번 주부터 우편 요금을 2센트 또 올렸다. 미 초창기 우편제도가 뭔지도 잘 모를 때는 정부가 우편배달에 관여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처럼 시장 경제가 발달한 상황에서 정부가 우편배달 독점권을 갖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하루 빨리 우편제도를 민영화하는 것이 보다 빠르고 값싸게 편지를 주고받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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