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동료들과의 대화 중 한국의 배심원 제도 도입이 화제에 올랐다. 한국의 배심원 제도 도입은 사법 개혁안의 국회 통과에 따른 것이다. 강제력 없이 권고적 효력만 갖고 피고인이 희망하는 사건에 한해서 적용되지만 국민들의 재판 참여를 허용한다는 측면에서 의미는 크다.
그런데 동료들 대부분은 과연 이 제도가 한국에서 잘 정착할 수 있을지에 회의적인 반응들이었다. “한국은 인맥, 학맥, 그리고 출신 지역 등으로 촘촘히 연결돼 있는 사회인데 배심원들의 공정한 판단이 가능할까.” “또 온정주의는 어떻고.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적인, 그리고 감성적인 판단이 작용할 소지가 많아.” “워낙 머리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배심원 제도가 확대되면 이것을 이권으로 악용하는 사람들도 나오지 않을까. 아마 배심원으로 생계를 꾸리는 경우도 생겨날지 몰라.”….
최초로 배심원 재판을 도입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는 전업 배심원들이 적지 않았다. 그리스인들은 배심원의 수가 많을수록 편견이 적게 작용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매년 6,000명의 배심원 후보를 뽑아놓고 재판이 있는 날 이들 후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제비뽑기를 통해 배심원을 선정했다. 하찮은 사건은 201명, 보통 사건은 501명, 그리고 중요한 사건은 1,501명의 배심원을 골랐다.
배심원들에게는 하루 2오볼로스의 수당이 지급됐는데 이 액수는 생업 걱정 없이 재판에만 몰두할 수 있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1년에 보통 300일 가량 재판이 열렸기 때문에 배심원 역할만으로 생계를 꾸린 전문적 재판꾼들이 많이 생겨났다.
한인들이 시민권을 딴 후 통상적으로 시민권자가 됐음을 가장 먼저 실감하게 되는 것은 배심원 출두 통지서를 받았을 때다. 미국은 시민권자의 의무로 ‘투표권’에 이어 ‘배심원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을 정도로 이것을 중요시 한다. 통보 받는 당사자들에게는 귀찮은 일일 수 있지만 미 수정헌법 6조에 따라 배심원 재판을 받게 되는 피의자들에게는 그 귀찮은 일이 ‘생사여탈권’으로 여겨질 수 있다.
얼마 전 LA에서 연극무대에 올려진 ‘12명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은 배심원을 다룬 작품이다. 지난 1957년 헨리 폰다 주연의 흑백 영화로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이 작품은 아버지 살해혐의로 기소된 한 푸에르토리코계 소년의 운명을 놓고 12명의 배심원들이 펼쳐 나가는 스토리다. 11명의 배심원이 유죄를, 그리고 단 1명의 배심원만이 무죄 추정을 하는 가운데 무덥고 협소한 방에서 12명이 갈등과 토론, 그리고 대립을 거치며 무죄평결에 이르는 과정을 밀도 있게 보여주고 있다. 반면 존 그리셤의 소설 ‘사라진 배심원’에서는 소송에 걸린 담배회사가 배심원들을 매수하고 회유한다. 이 소설에는 배심원 제도의 허점과 추악한 면이 잘 드러나 있다.
배심원 재판은 솔로몬의 지혜보다 민중의 건전한 상식이 더 지혜롭다는 전제 위에 이뤄지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이 하는 일과 제도에 완벽함이란 없다. 한국의 배심원 제도 도입도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한국적 토양 속에서 서구적 뿌리를 가진 배심원 제도가 어떻게 진화해 나갈지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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