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청산하는 문제에 있어서 독일과 일본은 완연히 다른 자세를 보여 왔다.
유대인을 수백만명 학살하는 등 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질렀던 독일은 종전 후 지금까지 60여년간 지속적으로 과거청산 노력을 기울이면서 반성을 거듭하고 있다. 전범들과 부역자들에 대한 엄중한 사법처리는 물론 피해자들에 대해 아낌없이 경제적 보상을 해 주고 후세들에게 과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알려 주기 위해 힘쓰는 모습 등에서 과거청산 노력의 진정성을 보게 된다.
이런 진정성은 독일 정치인들의 발언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리하트르 폰 바이테커 전 독일 대통령 같은 정치인은 독일이 항복한 1945년 5월8일을 “독일민족이 나치로부터 해방된 날”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면서 “독일이 과거를 반성했다고 해서 새로운 민족적 자기몰입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들은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죄하고 반성한다.
이런 태도는 과거사 문제 사과에 대해 소극적이고 기만적이기까지 한 일본의 정치인들과 대비된다. 미 의회에서 과거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상정되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번 주 부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와 관련한 일본의 입장을 설명했다는 보도이다. 찔리기는 찔린 모양인데 어딘지 떳떳치 못한 것 같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하는 문제에 대해 한 번도 진정어린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들이 즐겨 쓰는 ‘통절하다’는 표현에는 왠지 모를 가식적인 냄새가 묻어난다.
이런 차이에 대해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그녀의 명저 ‘국화와 칼’에서 수치심이 지배하는 일본문화를 들어 설명한 바 있다. 일본과 달리 독일은 기독교 전통 때문에 죄에 대한 고백과 참회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해석이다.
가족 내에서의 문제라면 그것이 무엇이 됐건 그 가족의 가풍과 법도에 따라 처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다른 가족, 그리고 타인과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다면 그것은 한 가족의 규범만으로 처리될 수 없는 문제이다. 일본의 문화를 이유로 이해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지난주 예루살렘을 방문해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기념관을 찾았다. 메르켈 총리는 나치정권에 희생된 유대인들을 추모하고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인간성은 과거를 책임지는 것에서 싹튼다.”
선배 정치인들을 잘 두고 잘못 둔 탓에 명암이 엇갈리는 두 총리를 보게 된다. 선배들이 적극적으로 과거 청산과 사죄에 나선 덕에 이스라엘에 가서도 당당히 멋진 문구를 남길 수 있는 메르켈과 여기저기 눈치 보며 해명과 모면에 급급한 아베. 메르켈의 방명록 메시지는 아베가 꼭 곱씹어 봐야 할 문구이다.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최소한의 양식을 지닌 국가로서 인정받는데 필요한 충언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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