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란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남의 일이 말 그대로 남의 일로만 느껴진다면 기억은 그저 기억으로 사라질 뿐 기사화 될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자는 세상만사에 쓸데없이 오지랖 넓게 참견하고, 타인의 상처와 아픔에 분노할 줄 아는 예민한 촉수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 ‘세상일이 다 그런거지’, ‘좋은게 좋은거지 뭐’라는 유서 깊은 처세술 앞에 촉수는 무뎌지고 분노마저 관성화되고 화석화된다.
몇 년째 내가 낸 혈세로 제말 안 듣는 이웃나라를 혼내주겠다며 세계 골목대장 노릇을 관둘 줄 모르는 부시의 얼굴을 저녁 밥상머리 TV로 대면한 채 목구멍으로 밥을 넘긴다. 아버지의 방화로 차에 갇혀 목숨을 잃은 남매의 비극에도, 식당에서 치정에 얽힌 살인사건이 일어나도, 심심하면 한인교회에선 목사파와 장로파가 조직돼 한일 축구전보다 더 치열한 한판 싸움을 벌여도 아니, 그보다 더 추악한 추문과 스캔들이 뉴스룸에 쏟아져 들어와도 내 심장은 쿵쾅거리지 않는다.
더 이상 세상엔 목매 울만큼 애통한 일도, 자다가 벌떡벌떡 일어날 만큼 억울한 사건도, 친구와 밤이 깊도록 술잔을 기울일 만큼 가슴 짠하고 열 받는 뉴스도 없다. 그저 쓸데없이 바쁘고 무료한 일상만이 종종걸음치며 남아있을 뿐이다. 아마도 잃어버린 건 예민한 촉수가 아니라 섬뜩하게도 희망이라는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것에도 희망을 걸지 않겠다는, 희망 따위에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방어본능일지도 모르겠다.
2007년 봄 현재, 여전히 희망에 대한 전망은 밝지 않다. 뉴스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소식들은 내외신 모두 신나는 뉴스보다는 나쁜 뉴스의 비율이 두 배쯤은 더 많다.
그러나 보도 블록 틈새에서도 풀은 자라고 꽃이 피듯 딱딱한 심장 틈으로 희망이 잔뿌리 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와 남동생을 아버지의 총탄에 잃었지만 꿋꿋하게 재활에 성공한 빈나, 상처하고 혼자서 아들을 키우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40대 가장, 이혼한 상처를 보듬으며 열심히 사는 재혼 부부, 야구가 좋아 일요일을 통째로 헌납하고 꿈나무들을 키우는 식당주인, 일본인들을 위한 서비스에 색안경을 끼고 쳐다보지만 보람차게 노년을 보내는 고희의 할머니. 이들과 만나 울고 웃다 오랜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 희망을 만났다.
시인 박노해의 입을 빌어 굳이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도식적인 이야기는 않겠다. 그저 희망을 거둬들이기에 아직 한인사회 구석구석 따스한 풍경들이 많이 숨어있다고 믿을 뿐이다.
한국 인기 시트콤이 표방하듯 ‘인생은 고해다. 거침없이 하이킥’. 그래도 희망은 계속 되니까. 그래도 희망만은 포기할 수 없으니까.
이주현 특집2부 차장 대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