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의 전편인 ‘한니발 라이징’은 혹평 속에 팬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제작비 7,400만달러 들인 ‘양들의 침묵’전편
두뇌가 총명한 의사 출신으로 키안티 포도주와 함께 식인하는 킬러 한니발 렉터를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 ‘양들의 침묵’(Silence of the Lambs·1991)의 전편인 ‘한니발 라이징’(Hannibal Rising)이 지난 9일 개봉됐으나 비평가들의 혹평과 함께 관객들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다. 제작비 7,400만달러를 들인 이 영화는 개봉 3주만에 흥행 10위권 밖으로 추락, 영화계에서는 이제 한니발 렉터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때가 왔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개봉 3주만에 흥행 10위권 밖
원작소설까지 독자 냉대 받아
한니발 렉터시대 종말 고할듯
‘한니발 라이징’은 어떻게 해서 한니발이 냉혈 잔인한 식인 킬러가 되었는가를 묘사한 복수극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고 새디스틱한 데다가 유혈과 끔찍한 살인과 식인으로 화면을 장식, 마치 도살장 안에 들어앉은 기분이 든다.
청년 한니발로는 프랑스 배우 가스파르 윌리엘이 나오는데 2차대전 때 폭격과 약탈자들에게 부모와 어린 여동생을 읽은 한니발을 돌봐주는 친척인 일본 여자 무리사키로 공리가 나온다.
특히 의아한 것은 이 졸작 영화의 각본을 소설 ‘양들의 침묵’ 시리즈의 작가인 토마스 해리스가 쓰고(그의 첫 각본 작품) 영롱하게 아름답고 서정적인 드라마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연출한 피터 웨버가 감독했다는 사실이다.
‘한니발 라이징’은 원작인 소설도 독자의 냉대를 받았다. 토마스가 쓴 렉터 사이클의 네번째 책인 ‘한니발 라이징’은 지난해 12월에 출판됐는데 지난 12일 현재 찍어낸 하드 카버 120만권 중 27만부만이 판매됐다.
‘한니발 라이징’의 개봉 첫 주말 수입을 전편들의 것과 비교해 보면 현격한 차이가 난다. ‘한니발 라이징’은 개봉 첫 주말 사흘간 총수입 1,300만달러를 올린 반면 2001년에 나온 ‘양들의 침묵’ 속편인 ‘한니발’과 그 다음 속편인 ‘붉은 용’(Red Dragon·2002)은 같은 기간에 각기 5,800만달러와 3,650만달러를 벌었다. 물론 시리즈 2, 3편들도 ‘양들의 침묵’에 비하면 장삿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싸구려 영화들이지만 ‘한니발 라이징’에 비하면 잘 만든 셈이다.
한니발 렉터의 말로를 이렇게 볼품없이 만들어 놓은 책임은 시리즈 제작자로 이탈리아 태생의 명제작자인 디노 데 로렌티스와 작가 해리스에게 있다.
데 로렌티스가 해리스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1986년 그가 해리스의 렉터 시리즈의 첫 소설인 ‘붉은 용’을 각색해 ‘맨헌터’(Manhunter)를 만들면서부터였다. 마이클 맨이 감독하고 현재 인기리에 방영중인 CBS-TV의 범죄시리즈 ‘CSI’에 주연하는 윌리엄 피터슨이 나온 이 영화는 ‘양들의 침묵’ 못지않은 뛰어난 스릴러인데도 관객의 무시를 당했다.
1991년에 개봉돼 오스카 작품 감독 남녀주연 및 각색상등을 휩쓸며 총수입 1억3,100만달러를 올린 ‘양들의 침묵’은 데 로렌티스가 제작하지 않았다. ‘양들의 침묵’이 나온지 10년만에 만든 ‘한니발’과 ‘붉은 용’이 그가 제작한 영화인데 ‘붉은 용’은 ‘맨헌터’를 재탕한 것이다.
그 후 데 로렌티스는 한니발 렉터를 계속 시리즈로 만들고 싶었으나 각색할 소설이 없어 고심 끝에 해리스에게 거의 공갈을 놓다시피 해 영화의 바탕이 된 ‘한니발 라이징’을 쓰게 했다고 연예전문 주간지 EW가 최근 말했다.
잡지에 따르면 한니발 렉터라는 인물의 영화 판권을 소유한 데 로렌티스는 토마스에게 “당신이 렉터 시리즈의 전편을 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시켜 글을 쓰게 만들겠다”고 말했다는 것. 이에 해리스는 처음에는 글을 안 쓰겠다고 응했다가 뒤에 마음을 바꿨다고.
한편 데 로렌티스는 ‘한니발 라이징’의 세계 흥행 성적을 봐 또 다른 전편을 만들 예정인데 과연 해리스가 더 이상 시리즈를 안 써도 영화가 나올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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