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행복한 세상 만들기
따스한 밥 한그릇, 노숙자들에게 더 따스한 정 열그릇
상항한미장로교회, 24일 산라파엘서 사랑실천 점심대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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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보는 정확했다. 토요일(24일) 이른 아침부터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미적미적 겨울을 씻어내고 기웃기웃 봄 오는 길을 닦아주는 비였다. 그러나 동가숙서가식 노숙자들에겐 언제나 궂은 비에 불과했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어디선가 새우잠을 잤을 그 노숙자들에게 따스한 밥 한그릇, 밥의 온기보다 훨 따스한 정 몇그릇을 대접하려는 상항한미장로교회(담임 손창호 목사) 사람들의 온정어린 손길 마음길은 더욱 정확했다. 손 목사를 비롯해 제리 박 장로(전 노스베이한인세탁협회장), 애담 햄턴 씨와 애쉴리 더글라스 씨 등 파란눈의 전도사들, 불과 일곱살배기 새무얼 박 어린이, 그리고 스무명 남짓한 주부교인 등등 이 교회 사람들은 이날 아침 9시쯤 빗속을 달려 산라파엘 다운타운 ‘세인트 빈센트 드 폴 센터’에 어김없이 모여들어 점심을 준비했다.
11시를 조금 넘어서자, 몇날몇밤 입은 채 지냈는지 땟국물과 빗물이 범벅이 돼 흐르는 누더기 외투차림의 털복숭이 노숙자, 어디서 구했는지 오클랜드 A’s 가짜모자를 눌러쓴 젊은이, 치렁치렁 빗지도 묶지도 않은 머리를 하고 나타난 40세쯤 되는 여자노숙자, 멀쩡한 옷차림의 젊은 노숙자들이 1년365일 점심을 대접하는 그곳 비영리 구호기관으로 모여들었다.
모처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불고기, 여러종류 전(붙임개), 김치…. 차디찬 잠을 자고난 뒤 맨날 차디찬 샌드위치 등으로 찬 속을 채워야 하는 노숙자들에게 상항한미장로교회 사람들이 마련한 따스한 점심은 보약이었다. 더러는 두번째 쟁반을 말끔히 비워놓고는 겸연쩍은지 옷을 뒤집어입은 뒤 주방앞 행렬 꽁무니에 서서 세번째 차례를 기다리기도 했다. 어느 주부교인은 말했다. “배도 고팠겠지만 따뜻한 음식이 얼마나 먹고싶었으면…”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치던 손 목사는 “기독교적인 사랑을, 무슨 기관에 돈 얼마 준다든지 하는 것보다는 함께 나가서 이렇게 함으로써 섬기는 정신을 몸소 배우는 것”이라고 도리어 베푸는 가운데 배움이 있음을 강조했다. 햄턴 전도사는 “언제든지 어떤 식으로든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커뮤니티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이날 행사의 의미를 정리했다.
교인 약 120명의 이 교회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노숙자들을 위한 식사대접과 전도활동을 열심히 해왔다. 이번 산라파엘 원정봉사는 지난해까지 2년동안 노스베이세탁협회를 이끌면서 그곳에서 식사대접 봉사를 했던 제리 박 장로의 제의로 이뤄졌다. 그는 “앞으로 좀더 (횟수를) 늘려야겠다”며 무슨 말을 이으려다 “쟤가 박주형 부목사의 아들 새무얼(7)”이라고 대견한 듯 소개했다. 새무얼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서툰 집게질로 반찬을 퍼주느라 열심이었다. 내려다보던 노숙자는 빙긋이 웃었다. 엄마 언니와 함께 토요 점심봉사에 참가한 여중생 류지서 양(프란시스코미들)은 주방과 홀을 정신없이 오가면서도 “이분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니까 기뻐요. 자주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정태수 기자>
tsjeong@koreatimes.com
사진/
상항한미장로교회 교인들이 밥과 반찬을 퍼주는 동안 노숙자들이 밝은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왼쪽부터 애담 햄튼 전도사, 손창호 목사, 제리 박 장로, 애쉴리 더글라스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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