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박찬호의 에이전트였다면 끝까지 거론됐던 4개 구단 중 뉴욕 메츠가 아닌 워싱턴 내셔널스를 권했을 것 같다. 올해 한해쯤은 속 편하게 뛰라고.
박찬호는 지난해 장출혈로 몸 고생, 2년 전에는 트레이드 된 뒤 플레이오프 엔트리에서 제외돼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 전 텍사스에서의 시간도 비록 돈은 많이 벌었어도 마음이 편치 않았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박찬호가 왜 메츠를 선택했는지 충분히 이해는 간다. 어차피 돈은 얼마 안 되는 마당에‘기회’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기회’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선발투수로 뛸 수 있는 기회, 둘은 우승할 기회를 말한다.
그렇게 보면 당연히 메츠로 가야했다. 메츠는 우선 허약한 내셔널리그 동부조 소속으로 작년에 무려 12게임차로 디비전 왕관을 쓴 팀이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토론토 블루제이스도 디비전 우승후보로 꼽을 수 있는 반면 메츠는 우승후보 0순위다.
내셔널스는‘롱샷’에 불과하다. 따라서 한 번 월드시리즈 무대에 서보는 게 목표라면 메츠가 올바른 선택이다.
그런 메츠가 투수진에 문제가 많아 박찬호가 당장 들어설 자리가 있다는 점까지 맞아떨어졌다. 메츠는 타선과 내야 수비가 막강한 반면 에이스 페드로 마티네스가 고장나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또 제2선발 탐 글래빈은 다음 달 41세가 되며 제3 선발 올랜도‘엘두케’허난데스도 엉터리 쿠바 기록에 숨겨져 36세로 나와 있지 실제로는 글래빈보다 더 나이가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작년 가을 마티네스와 허난데스가 둘 다 고장나 루키였던 잔 메인이 플레이오프에서 제2 선발로 기용됐던 점을 감안하면 박찬호가 그때 메츠에 없었던 게 한이다.
하지만 박찬호는 아직 은퇴하기 전 우승의 한만 풀길 바라는 시점은 아닌 것 같은데 너무‘기회’에 집착했다는 생각이 든다. 뉴욕은 마음 편하게 뛸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메츠는 돈이 많은 팀이다. 이미 수많은 수퍼스타들에게 엄청난 돈을 투자, 우승을 못하면 무조건 실패작인 팀이다. 당장 우승해야하는 프레셔가 어마어마하다.
조금 부진하면 느긋하게 기다려줄만한 팀이 못 된다. 자원이 풍부해 당장 다른 선수들을 사들인다. 또 미국 최대의 미디어 시장인 만큼 언론이 주는 프레셔도 엄청나다. 뉴욕은 케니 로저스, 랜디 잔슨 등이 다 부셔져 나간 곳이다.
다음 기회를 노리는 의미의 1년 계약이라면 차라리 속 편하게 내셔널스에서 뛰는 게 좋았을 수도 있다. 내셔널스는 어차피 바닥을 헤맬 것이 예상되는 팀으로 프레셔가 없다. 그렇다고 작년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나 그 전 플로리다 말린스처럼 돌풍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다는 법도 없다.
팀이 부진해도 제몫만 다하면 플레이오프 레이스에 한창인 팀으로 트레이드될 가능성도 높다. 내셔널스는 매년 그런 베테랑 선수를 트레이드해 유망주들을 끌어 모으는 팀이다. 그때가서 내셔널스가 박찬호를 메츠로 트레이드할 수도 있는 것이다. 메츠에서 작년 스티브 트랙슬(15승8패·방어율 4.97)처럼 타선 덕에 보기 그럴 듯한 성적을 올려봐야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워싱턴 DC에도 한국인이 많다. 내셔널스와 같이 스팟라이트에 굶주린 구단은 박찬호가 몰고 오는 한인 팬들의 관심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질 수도 있다. 메츠는 돈이 많아 다저스처럼 ‘흥행’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수 있어도 내셔널스에게는 박찬호가 상상도 못했던, 꼭 붙잡아야 할 ‘내셔널 트래져’일 수도 있다.
이규태 <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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