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명의 노동자들이 하와이에 도착해 미주 한인이민 역사의 기점이 된
1903년, 오클랜드에서 출생한 한인 피터 장 옹의 생애가 27일자 산호세
머큐리뉴스에 의해 조명됐다(사진).
지난 11월 26일 103세로 생을 마감했던 고 피터 장옹은 1903년 10월
오클랜드에서 출생,학계 일각에서는 그를 미 본토에서 탄생한 최초의 한국 국적자로 보고 있다.
외교관 출신인 부친이 사망한 후, 1922년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서 미
해군에 입대한 그는 또한 아시아계 최초의 미 해군 다이버(심해 잠수)로 기록돼 있다.
하와이 진주만 등에서 근무했던 장 옹은 2차 대전이 끝나고 퇴역한 후에는
다시 베이지역의 레드우드 시티로 이주, 녹음 시스템 개발업체 앰팩스에서
근무하며 부인 헬렌 씨(1998년 작고)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다.
특히 아들 피터 장 주니어 씨는 1966년 산타크루즈 카운티 최초의 아시아계 검찰총장에 당선돼 자신의 모친을 비롯해 13명을 연쇄 살인한 희대의 살인마 에드워드 캠퍼러를 체포, 당시 산타크루즈가 ‘세계 살인사건의 수도’라는 오명을 씻으며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2004년 피터 장옹보다 먼저 암으로 사망했다.
한편 장 옹이 생을 마칠 때까지 생활하며 제2의 고향이 된 마운틴뷰 소재
아베니다스 시니어 헬스 센터에서는 28일 장 옹을 기리는 추모의식이
거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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