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중간선거가 대승으로 끝나자 3년 반의 선거운동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딸(미셸 박)과 나는 가정사를 사위에게 일임하고 강원도 어느 바닷가에서 좀 쉴 참으로 한국에 찾아들었다.
마침 미전역 차세대 영어권 평통위원들의 모임이 있는 때이고 딸도 그 일원이어서 같은 호텔에 투숙하였다. 이튿날 아침 나도 딸과 젊은이들 틈에 끼어 식사 자리를 같이 하였다.
마침 좌석 중앙에 그 날 모임을 주관한 분이 앉아 있었다. 그는 장관 내정자이고 성공회 신부라고 소개를 받았다. 온화하고 단정한 모습이었다.
조식이 부페로 되어 있어 일행이 모두 일어나 이것저것 접시에 음식을 담아들고 돌아왔고 나도 몇 가지 담은 접시를 들고 자리에 앉으며 “장관님은 식사를 가져오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이제 옵니다” 하였다. 먼저 먹기도 뭣해서 머뭇거리는데 잠시 후 식당사람이 반상을 장관 후보 앞에 놓았다.
장관 후보는 상 받쳐 먹고 우리는 접시의 음식을 먹는다. 그때 내 뇌리에 퍼뜩 떠오르는 것이 수학여행 풍경이었다.
한국의 수학여행에서 선생님들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상을 받곤 했다. 학생들의 식사는 물론 소찬이었다. 당시는 그것이 상례로 알았다.
그러나 70년도 초에 도쿄 한국학교에 부임해서 간 수학여행이나 학교에서의 식사는 교장이건 평교사이건 학생이건 똑같은 식단이었다. 나는 그날 장관후보 앞에 가져다 놓은 차별의 격식을 보며 한국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였다.
몇 해 전 워싱턴에서 열린 미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한국 국회위원이 비서가 받쳐주는 우산 속에 머리를 디밀고 걸어가는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며 국회의원 손은 출장 갔는가 하고 생각한 일이 있다.
한국의 가을 하늘은 청아한데 나라 안은 한치 앞이 안 보이는 혼란 그 자체였다. 파도소리를 들으며 나는 하루 종일 전날 아침 식탁을 같이 했던 장관후보의 국회 인사청문회에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정몽준 의원이 6.25를 어떻게 규정짓는가 하자 머뭇거리며 “응답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재차 물은즉 “이미 다 규정된 일을… 남침이지 않느냐” 고 반문하듯 대답했다.
일요일 새벽에 북쪽에서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온 일은 38선 부근 사람들이 알고 서울사람이 알고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사람들이 알고 장관후보자의 조부모와 부모가 알고 우파도 알고 좌파도 안다. 그 시대를 직접 겪은 이들이 퍼렇게 살아있다.
알고 있으면서 김정일의 억지 괴변에 동조하는 자들이 민족의 지도자가 되어서야 되겠는가. 나는 울분을 느꼈다. 이 나라를 여태껏 누가 지켜 왔는데.
내 조국 대한민국은 갈수록 태산이다. 민심이 말이 아니었다. 우리 모녀는 쉬러갔다가 태산 같은 걱정만 안고 돌아왔다.
<정옥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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