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서 부시 대통령의 한반도 휴전협정 종료선언 가능성의 발언에 이어 토니 스노 대변인이 지난달 18일 백악관 브리핑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목록 중에는 ‘한국전 종료’를 선언하고 경제협력과 문화, 교육 등 분야에서 유대를 강화하는 게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한국전 종료를 선언할 경우 그 순간 한반도 53년간의 휴전협정은 자동적으로 종식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이어온 한미 상호방위조약 역시 자동 폐기될 수 있고, 북한과도 남한과도 따로, 또는 연합해서 하나로 미국과 한반도 상호방위조약 같은 게 새롭게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예비역 노장성들이 길에서 외치던 전시 작전통제권 이양 같은 복잡한 문제 등도 자동 폐기된다. 말하자면 지난 53년간 이어왔던 한반도 휴전협정 하의 모든 역사는 종결되고 백지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지난 50년간 김일성·김정일이 주장해 온 ‘미·북 평화협정, 남북 불가침선언’ 어거지 해법에 미국이 응하고 있다는 의미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이란 것이 결국은 미국과 북한간의 평화를 위한 협정일 뿐 ‘대한민국을 위한 평화’가 아니란 데에 문제가 있다. 한국의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정전을 반대하고 북진통일만 고집하다가 결국은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되지 못했다.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클라크 대장과 김일성, 그리고 중국의 팽덕회 중공 의용군 사령관, 그리고 증인에 북측 참모총장 남일, 유엔군 수석대표 윌리엄 해리슨 중장 등이 1953년 7월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서명한 법적 당사자가 되었고 한국은 제외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는 군사적 대치상황이 북미간 문제가 아닌 남북간 문제이므로 남북한이 당사자가 돼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본다. 정전협정상 법적 당사자인 미(UN군)-북-중보다는 실질적 당사자인 남북이 평화체제 구축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행히 부시 대통령이 한국전 종전선언에 김정일이 반대하지 않으면 한국도 공동 서명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다니 간신히 한국의 체면은 살린 것 같으나 김정일의 손아귀에 달린 것 같다.
북한은 정전협정의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며, 이 협정이 북한과 미국을 적대관계로 규정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그 논거로 북한은 정전협정이 일방 서명자인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이 미국 군인(4성 장군)이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북한은 이 실질적 당사자론에 입각하여 미국이 정전협정의 당사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논리를 따르면 만일 유엔군 사령관이 영국인이 되면 영국이, 또는 캐나다인이 되면 캐나다가 각각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되었을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러한 논리구성은 법리적으로 모순된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한반도 종전선언, 그리고 평화협정 논의라는 베트남에서의 부시 대통령의 발언은 한반도가 곧 평화로 쉽게 간다는 달콤한 노래가 결코 아니다. ‘핵 포기의 전제’를 외교적 수사로 달았지만 그 말은 오히려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으로 들어야 하는 무서운 경고이자 마지막 통보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이번 6자회담에서 북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김정일은 제거된다. 그 과정에서 한반도가 겪어야 할 위기의 격랑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지금 한국은 이미 붉은 격랑의 중앙으로 휩쓸려 들어간 셈이다. 면접시험에서 주적이 미국이다, 북한이다, 일본이다 갈팡질팡하는 판검사 변호사가 되겠다는 대다수 사법고시 합격자들의 국가관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한반도이다. 폭풍전야의 붉은 위기가 김정일의 핵 도발과 함께 6자회담과 한반도의 미래와 주변국인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등의 사이에서 이제 그 모든 것의 결론으로 가야 하는 시점은 의외로 너무도 빠른 속도로 쓰나미처럼 휘몰려오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유흥주> 프리덤 소사이어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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