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이름이 가지는 기능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문화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진다. 첫번째 기능은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한 표식, 즉 명칭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물건, 장소 등에 고유한 이름을 붙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두번째 기능은 “이름을 높이다”“이름을 더럽히지 마라”“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예에서 보듯이 이름이 그 사람 자체를 대표한다.
한국이름을 영어로 표기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된다.
첫번째, 이름 체계의 차이로 인한 문제이다. 한국이름은 미국이름과는 달리 첫 이름(first name)과 중간 이름(middle name)의 개념이 없다.
딸의 이름을 순 한글로 ‘고운’이라고 지었는데 영어로 ‘Ko U.’로 표기하면서 아주 이상한 이름이 되어버렸다. 미국에서 학교를 시작할 때 담임선생이 “당신 딸은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고 하였다. 딸에게 물어보았더니 “‘코’는 내 이름이 아니잖아!” 볼멘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이런 문제점을 아는 사람들은 이름의 두 글자를 달아서(Koun) 혹은 하이픈으로 연결하여 (Ko-Un)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
두번째, 발음의 차이로 인한 문제이다. ‘박’씨를 영어로 ‘Bak’이라고 하지 않고 보통 ‘Park’ 혹은 ‘Pak’이라고 표기한다. 마찬가지로 ‘ㅈ’은 ‘J’ 대신에 ‘Ch’로 하기에 ‘장천경’을 영어로 ‘Chun K. Chang’으로 표기하면 ‘천 챙’이라는 국적불명의 엉뚱한 이름이 되어버린다.
세번째, 언어의 차이로 인한 문제이다. 한국에서는 이름이 사람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되어 사주팔자에 맞추고 또한 의미를 고려하여 작명하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이름이 좋지 않다면서 바꾸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서는 주로 존경하는 성인이나 조상의 이름 혹은 발음을 기준으로 한다. 한국이름을 영어로 표기할 때 원래 의미는 사라지고 발음에 따라 전혀 다르게 바뀌는 경우도 있다. ‘선영’ ‘선철’ 등은 이름이 ‘Sun’(태양)으로, ‘덕호’ ‘덕자’ 등은 ‘Duck’(오리)이라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상에 열거한 사항들을 고려해 볼 때 5가지의 대안이 있다. 첫째는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영어로 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발음과 언어의 차이로 인해 거의 불가능하다. 둘째, 한국식 발음에 가까운 영어이름으로 표기하는 것이다. 문제는 영어표기와 동시에 이름의 의미는 사라지며 전혀 엉뚱한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셋째는 영어이름의 이니셜, 예를 들면, ‘JH’를 사용하는 것이다. 한국이름도 영어이름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이다. 넷째는 영어이름을 별칭(Alias)으로 하나 더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호칭을 위한 것이지 법적인 이름이 아니므로 별도의 조치 없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미국사람들도 별칭을 종종 사용한다. 나의 경우 “John” J.H. Im이라고 하여 John이 별칭임을 표시한다. 다섯째는 법률적 절차를 거쳐 한국이름을 영어이름으로 변경하는 것이다. 대개 시민권 신청 혹은 결혼할 때 하면 쉽게 바꿀 수 있다.
영어 별칭을 하나 가지는 것은 조상이 준 애써 지어준 이름을 버리는 것이나 한국사람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것도 사대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국이름의 영어 표기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손쉬운 방법이다.
물론 유엔이나 세계은행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한다면 한국이름이 자신뿐만 아니라 나라 혹은 민족의 정체성을 반영하게 되므로 반기문 유엔총장의 경우 ‘Kee M. Ban’ 혹은 ‘Kee-Moon Ban’이라고 하지 않고 ‘Ban Kee-Moon’이라고 하는 것이 당연하다.
<임진혁> 새크릿 하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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