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전후 한국에서 인기가수였던 김추자의 노래가 금지곡이 된 일이 있다. 김추자는 당시 수준으로는 대단히 현란한 춤을 추던 관능적인 가수였다. 그런데 그가 인기곡‘거짓말이야’를 부르며 추던 춤의 손동작이 간첩의 암호라는 소문이 퍼지더니 급기야는 노래가 금지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코미디가 따로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버젓이 현실로 일어난 것은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다. 이 지구상에 한국민들 만큼 ‘간첩’을 가까이 느끼며 살아온 사람들도 없을 것 같다.
6.25 전쟁 이후 남북이 휴선전 하나를 두고 적대관계를 지속하면서 ‘간첩’은 우리 생활의 일부였다. ‘반공’과 ‘방첩’은 국민으로서 지켜야할 가장 기본적 의무여서 대문만 나서면 간첩 신고하라는 안내표지들이 거리마다 넘쳐났다.
한국에서 60년대, 70년대에 성장기를 보낸 연령층이라면 “자수하여 광명 찾자”“간첩은 표시 없다. 너도나도 살펴보자”“간첩신고 너나 없고 간첩자수 밤낮 없다”“의심나면 다시 보고 수상하면 신고하자” 같은 표어들은 너무 익숙해서 그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아낼 정도이다. 이들 구호가 생소하다면 그야말로 ‘간첩’이다.
‘방첩’교육의 일환으로 학교에서 배운 것은 간첩 식별법. 수상한 사람을 보면 신고를 해야 하는 데 ‘수상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새벽이나 밤중에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 혹은 바닷가를 배회하는 사람, 그래서 구두에 진흙이 묻어있는 사람, 계절과 유행에 맞지 않는 양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 ‘동무’나 ‘호상’같은 이북 말을 쓰며 말씨가 이상한 사람, 한밤중에 이북 방송을 듣거나 ‘뚜뚜 뚜 뚜뚜뚜…’같은 무전기 소리를 내는 사람 등이다. 물가나 지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수상한 사람에 속해서 버스 값을 모르면 금방 의심을 받았다.
적국의 정보를 빼내야 할 간첩이 이렇게 허술하다면 어떻게 첩보활동을 할 수가 있을까. 어리숙한 시대의 어리숙한 이야기들이다.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자의 용병술 중 핵심은 정보활동이다. 간첩을 얼마나 잘 이용해 적국의 정보를 빼내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고 했다. 그래서 간자(間者) 즉 간첩은 전군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선택해 최고의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간자를 사용하는 용간(用間)은 향간, 내간, 반간, 사간, 생간의 5가지로 나뉘었다. 향간(鄕間)은 적국의 사람, 내간(內間)은 적국의 관리, 반간(反間)은 적국의 간첩을 포섭하여 정보원으로 활용하는 것이고, 아국의 정보원 중에는 적중에 들어가 목숨을 걸고 허위 정보를 유포하다가 잡혀 죽는 사간(死間), 정보활동을 하고 살아 돌아와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생간(生間)이 있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한국에서 다시 간첩 사건이 터졌다. 미주한인과 민노당 관련자들이 간첩혐의로 체포되어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이들은 386세대를 중심으로 한 현 정계 실세들과도 줄이 닿아 있다고 하니 앞으로 ‘간첩’파장이 얼마나 클지 알수가 없다. 한반도에서 ‘간첩 없는 세상’은 언제나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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