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금융계에는 몇 가지 철칙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정부 기관과는 죽어도 소송하지 말라”다. 어떤 이유로든 일단 이들과 법정에 서게 되면 타협이란 게 없다. 달이 가고 해가 가도 끝장이 날 때까지 가야한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재판 비용이 들어도 저쪽에서는 아쉬울 게 없다. 개인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리에 있는 동안 무사히 넘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사안이 별 것 아니거나 자기 쪽에 문제가 있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만약 그랬다가 나중에 책임 추궁을 당하는 날에는 안 하느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반면 당하는 쪽에서는 죽을 맛이다. 결과가 언제 어떻게 나올지도 알 수 없는 데다 그 동안 꼬박꼬박 돈과 정력을 쏟아 부어야 하고 만에 하나 재판에 지기라도 하면 옴팍 뒤집어 써야 한다. 개인 기업이 어떻게 해서라도 이를 피하려는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해를 넘기면서 한국 수출 보험 공사와 한국 은행들과의 거액 소송에 시달려온 중앙은행 김선홍 행장이 임기 11개월을 넘기고 전격 사임했다. 이사회 측은 문책이 아니라지만 사실상문책성 인사라는 게 한인 은행계의 중론이다.
김 행장이 물러난 것은 물론 소송 때문만은 아니다. 금융 감독국의 제재(MOU)는 풀리지 않고 있으며 눈독을 들였던 뉴욕의 리버티 은행 인수마저 윌셔에 빼앗겼다. 한 때 한미에 이어 랭킹 2위였던 중앙은 나라에 밀린데 이어 작년에는 자산 규모에서 윌셔에 까지 뒤져 4위로 처졌다. 올 들어서도 자산과 이익 면에서 윌셔를 따라잡기는커녕 더욱 뒤떨어진 상태다. 이 중 상당 부분이 소송과 감독국 제재 탓이라는 분석이다.
요즘 심기가 편안치 않은 것은 김행장만은 아니다. 대다수 한인 은행장들이 발을 뻗고 자지 못하고 있다. 여러 한인 은행이 줄줄이 생기면서 경쟁은 날로 치열해지는데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의 거듭된 금리 인상으로 대출 수요는 현저히 줄고 있다. 주택보다는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주로 해온 한인은행들은 피해가 좀 덜 하다고는 하나 부동산 경기 위축도 수익에 상당한 타격을 주고 있다.
지난 2년간 한미, 나라, 윌셔, 중앙 등 4대 은행의 주가는 거의 오르지 않았거나 오히려 하락했다. 사정이 어렵기는 후발주자인 군소 은행들이 더하다. 한 두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부실 대출, 감독국 제재, 이사회 내분 등 내홍을 겪고 있다.
‘은행계의 꽃’으로 불리는 행장직은 많은 연봉에 스탁옵션 등으로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는 자리로 알려지면서 한인사회에서 선망의 대상이 돼 왔으나 올 들어서만 나라, 새한, 중앙 등 여러 행장들이 잇달아 쫓겨나는 것을 보면 결코 쉬운 자리는 아닌 것 같다. 은행을 세워 쉽게 돈을 벌거나 편안히 행장 노릇을 하던 시대는 지나간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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