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간지 첫면에 백두산 천지 앞에서 성화를 높이든 흰 유니폼의 여자 선수의 사진이 컬러로 나와 있다. 기사내용을 읽기 전, 사진만 봐도 가슴이 울렁이는 민족의 영산 백두산이다. 수천년 이어져 내려온 우리의 민족정기가 깃든 백두 영산의 천지여서 의심 없이 우리 선수가 성화를 높이 들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인가. 어찌하여 내 민족의 영산 앞에 중국 선수가 성화를 쳐들고 서 있단 말인가. 그의 당당한 표정 앞에서 얼이 빠진다. 부끄럽게도 허리 잘려 신음하며 살아온 지난 반세기도 억울한데, 이제는 민족 정기의 근원인 백두산마저 중국이 제것인양 세계에 PR하고 있다.
세계사를 보면 민족과 국가는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도 역사를 지킨 민족은 살아남아 왔음을 알 수 있다. 그 좋은 예가 몇 백만 명밖에 안된 이스라엘 민족이다.
반면 인류역사상 가장 넓은 지역을 지배한 징기스칸의 후예들은 역사를 소홀히 한 나머지 짧은 기간 안에 그 흔적이 소멸되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중요성이다.
그럼 우리의 역사상황은 어떤가. 원래부터 중국과의 경계는 1712년 5월15일 청과 조선사이에 ‘백두산 정계비’를 세워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송화강의 상류지류인 토문강으로 정했다.
그 결과 동북부 만주 땅 간도가 한국 땅이 되었는데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이 1909년 9월4일 청과 간도협약을 체결하여 남만 철도부설권을 얻은 대신 한국 땅 북간도를 청에 넘겨버린 것이다.
국제법상 영토분쟁 시한은 100년이어서 3년 후인 2009년 9월4일 안에 국제사법재판소에 이의제기를 신청해야 잃어버린 우리 땅 북간도를 찾을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안 중국은 미리 선수를 치고 2003년부터 ‘동북공정’을 대 국가사업으로 책정하여 2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을 자신들의 문화재로 유네스코에 신청하여 2004년 7월 등재에 성공했다. 이로서 중국은 혹시라도 언젠가 한국이 잃어버린 간도 땅을 찾지 않을까 겁을 내어 미리 준비작업으로 고구려 역사를 자기 것으로 왜곡시키는 작업에 선고지를 점령한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2003년 말 한국에서는 정부와 학계 인사들간의 대책모임이 있었지만, ‘농산물 수출입을 비롯한 교역을 위해서 중국의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정부 당국자의 강권으로 오히려 모임이 중단돼 버렸다.
더 나아가 현정부는 학계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하자 이에 대한 무마용으로 2004년 3월 고구려재단을 만들었는데 그것마저도 지난 8월31자로 동북아시아재단으로 흡수시켜 없애버린 상황이다. 역사 의식이 없는 정부의 횡포와 무능이다.
알고 보면 시작은 1962년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중국의 선심을 얻기 위해 ‘중조변계조약’을 통해 백두산 천지의 50%를 상납(?)한데서 시작됐다. 그가 진정 반만년 역사에 대한 의식과 민족애가 있었다면 잃어버린 간도 땅을 찾아 옛 고구려 역사의 보존에 힘을 썼어야 했다.
그렇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민족의 영산을 반으로 나눠 중국에 바쳐버렸으니 중국이 내년 장춘에서 열리는 제6회 겨울 아시안 게임 성화를 백두산 자기 땅 쪽에서 채화하는 것을 보고서도 우리는 할 말이 없게 됐다.
지금은 우리 역사에 중요한 시점이다. 한국 정부, 학계, 시민단체가 ‘역사 의식’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한다. 남북한 통일과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큰 세력 중국으로부터 한반도를 지키는 일이다. 역사를 잃은 민족은 결국 영토도 빼앗긴다는 역사의 가르침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재동 한미 인권 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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