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선(하버그룹 수석부사장)
월남전이 시작되고 텔레비전에서 전쟁 상황이 중계될 때다. 미군의 공습으로 베트콩들이 소탕
되는 농촌 장면이 나올 때면 시골길에 일제 픽업트럭들이 자주 보였던 기억이 난다. 다 허름한
트럭 뒷판에는 열이면 열 ‘혼다’ 아니면 ‘도요다’ 상표가 크게 찍혀 있었다.
아프리카 속의 우간다에서 학살이 기승을 부릴 때 피난가는 민간인들의 트럭도 역시 이 일본의
차들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마다 나는 일본사람들을 참 지독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우리는 딴청 부리고 있을 때 그들은 벌써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감히 생각도 못
하던 차를 만들어 이렇게 세계 곳곳에, 그것도 깊숙히 구석 구석까지 파고 들어갔구나 하는 생
각을 했다.
그 후에 ‘소니’는 전세계를 지배라도 한 양, 일본의 대명사가 된 듯이 승승장구하지 않았는
가?
미국사람들이 일본사람을 가리킬 때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많이 들어왔
다. 들을 때마다 입맛이 씁쓸했지만 많이 부럽기도 했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안 가는 파나마를 갔을 때다. 물론 파나마 운하가 있어 유명하지만 또 한
가지, 그곳에 있은 ‘콜론’ 자유관세무역지구는 세계적인 무관세 지역이고 특히 대서양에 산
재해 있는 카리비안의 섬나라들, 중남미의 모든 무역을 관장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파나마시티 공항에서부터 고속도로를 타고 ‘콜론’으로 달린다. 오른쪽으로 다가오는 큰 대형 화면이 내 시선을 끌었다. 영어로 된 ‘삼성’의 싸인이 하이웨이를 꽉 메우는 듯 했다. 얼마를 달린 후에는 또 ‘대우’의 싸인이 나를 반겨주기나 하는 것 같이 내 앞을 가로막더니 지나간
다. 가슴이 뭉클하면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 한국이 이루어낸 기적같은 브랜드가 멋있기만 했다.
참 한국사람들도 이제는 보통이 아니구나. 우리가 자주 생각지도 않는 이런 곳에까지 뚫고 들어와서 활동을 하는구나 하면서 놀라기도 했다.
지금은 다른 젊은 담당자들이 남미로 여행을 자주 하지만 10년 전만해도 브라질로 자주 왕래를 할 때다. 직행편이 없어서 리오데자네이로에서 비행기를 갈아 타고 쌍파울로로 간다. 공항에 내려져 갖고 탄 짐을 카트에 싣고 세관을 거쳐야 한다. 카트마다 붙어있는 ‘LG’의 싸인이 마치 오래동안 못 만났던 한국사람들이나 만난 듯 그렇게 반갑다. 이것은 50여년 전의 럭키 치약하고는 너무도 거리가 먼 현실이었다.
공항 가운데를 꽉 채우고 있는, 또 승객들마다 끌고 가는 카트에 LG 싸인을 쳐다보면서 나 혼자 슬쩍 미소를 지어본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아마도 내깐에는 참 기분이 좋았던 거다.요즈음은 차를 몰고 맨하탄이든 퀸즈이든 아니면 어느 하이웨이이든 가는 데마다 눈에 많이 띄는 ‘현대’차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반세기 전 비행장 활주로 공사하던 그 회사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유독 10년 이라는 워렌티를 준다고 선전을 했지만 중고차가 되면 그 가치가 형편없이 낮아서 미국 소비자들이 꺼려했던 것이 불과 몇년 전까지의 일이었는데 이제는 질도 많이 개선되고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미국사람들도 그 돈 가지고 참 좋은 차를 산다고들 말한다.
미국사람들은 과연 세계 100대 기업에 드는 한국의 유명 브랜드를 보고 쓰면서 한국과 한국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코리안이 스마트 하다거나, 아니면 똑똑하다고 아직(?)은 말하지 않는 것 같다. 미사일을 쏜 노스 코리아와 사우스 코리아도 분별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 너무 조급히 기대해서는 안되겠다. 이 만만치 않은 세계적인 한국 브랜드들을 창출해낸 메가 기업들이 어느 공화국 때 어떻게 시작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하여 오늘에 왔는지는 알고 싶지 않지만 세계 어디에 가서나 한국을 대표하는 이 이름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한국사람이란 것이 자랑스러워지고 이 브랜드들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참 고생을 많이 했다고 어루만져 주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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