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에서 개업을 하는 수의사 T씨를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이 사람은 텍사스 대학의 수의사들보다도 더 많은 말을 치료한다고 했다. 수십 만 달러씩 들여 사들인 혈통 좋은 경마용 말이 병들면 수 만 달러를 들여서라도 병을 치료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 병중에도 인간의 루게릭스 병에 비교할 수 있는 퇴행성 신경질환은 그 경과가 좋지 않고, 최근 들어서 발병률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 병에 대한 치료약은 전무한 상태인데 T씨는 그의 친구가 개발 중에 있는 R이라는 약을 혈관 투여함으로써 기적같이 사망 위기에 있는 말을 살린다고 한다.
놀라운 점은 아직 개발중인 R이라는 약을 쓰는 방법이었다. 동물의 권리도, 이 경우는 마권(馬權)이라 해두자, 중요한 미국 법에 의하면 연방 식품의약국(FDA)의 정식 허가가 나지 않은 약은 동물에게라도 쓸 수는 없다고 한다. 그런데 예외 규정은 있어서, 말의 소유주가 자기 자신의 말을 치료할 때는 이런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다 했다.
수의사 T씨는 이런 법적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말을 자신의 병원에 입원시킬 때, 말 주인으로부터 말을 산다. 죽을 지도 모를 병든 말을 1달러를 지불하고 매매 계약을 하면 법적으로는 엄연히 수의사 소유의 말이 된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에 실험용 약을 써서 치료를 해도 법적인 하자가 없다. 일단 치료를 해서 말이 회복된 후에는 말 주인에게 치료비를 계산한 몇만 달러 플러스 일 달러를 받고 다시 판다고 한다.
만일에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면, ‘매매를 가장한 치료 행위’ 인고로 편법 혹은 탈법으로 규정해서 처벌의 대상이 될 수가 있으리라.
수의사 T씨의 말에 의하면 주변에서 질투의 눈으로 ‘고발’하는 경쟁자가 있어도 불법이 아닌 것은 모두 합법인 미국에서는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합법이 아닌 것은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되, 그래도 적용할 법리에 궁색해지면, 편법 탈법이라는 편리한 단어를 쓰는 것 같다.
최근 원유 값이 급등하면서 석유관련산업체가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되자, 가격단합, 유가조작 등의 불법행위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지 반년이 지났지만, 별 뾰족한 성과는 없는 것 같다. 만일 한국검찰에게서 배워 온다면 불법이라고 까지는 못해도 탈법 편법이란 묘한 개념을 적용해서 충분히 처벌 대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 재벌의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일어났다는 편법 재산증여 논란이 한창이던 때에 한국검찰에서는 소위 말하는 편법 탈법이란 단어를 불법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런 창조적인(?) 개념을 사용해서 괘씸하거나, 국민정서를 거스른 몇몇 사람에게 혼을 내주는 사건은 후진국에서나 흔한 일이다.
여기에 도덕성까지 따지고 들면 영락없이 누군가는 불이익을 당하게 마련이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누군가를 잡아서 벌을 주고 혼을 내주려면 엄연히 ‘좁은 의미로’ 규정된 불법에 한해서만 가능해야 한다.
이렇게 까지 법의 테두리를 넓혀 가며 처벌하는 정부가 최근 일어난 미군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에서 죽창으로 군경에게 상해를 입힌 시위자·난동자들의 엄연한 불법 행위는 눈감아 준다.
법치사회를 유지하려면 이현령 비현령의 사람잡기 식 기소와 법 적용은 사라져야 한다고 본다. 한국검찰은 미국검찰의 좁은 의미의 ‘불법’ 해석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좁은’ 의미의 명확한 범법자부터 사법조치를 하는 진정한 법질서를 유지해야한다.
정균희
UCLA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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