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들이 미국 중서부 작은 도시에 살다가 LA에 오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먹거리에 관한 한 LA는 천국이다”는 말이다.
콜로라도에서 40년쯤 살다가 은퇴하고 남가주로 이사온 한 부부는 은퇴 생활 중 빼놓을 수 없는 낙으로 식도락을 꼽고 있다. 미국 주류사회 속에서 생활하느라 좀처럼 먹을 수 없었던 그리운 고향 음식들을 원 없이 다 맛보고 있기 때문이다.
소도시에 살면 우선 한국 음식 재료가 변변치 않은데다 한국 식당도 별로 없고, 냄새에 신경이 쓰여서 제대로 해먹지도 못한다. 행여 몸에서 마늘 냄새 날까봐 생 마늘은 아예 못 쓰고 마늘 가루로 양념을 할 정도이다. 그런 환경에서 오래 살다 보면 음식 향수병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LA 한인타운은 한국 음식이 다양하고 맛있기로 유명한데, 가장 큰 이유는 경쟁이다. 식당이 워낙 많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맛과 서비스는 기본이고 그외 뭔가 손님을 끌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어야 살아남는다. 그래서 종종 등장하는 것이 한국의 음식 유행 따라잡기이다.
한국에서 해장국이 유행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LA에도 해장국 전문집들이 등장하고, 낙지 요리가 유행하면 낙지전문집들이 또 몇 개씩 생겨 경쟁을 한다. 가장 최근에 인기몰이를 하는 음식은 묵은지- 묵은 김치 요리이다.
묵은지란 원래 봄이 오는 이때쯤 먹던 쉰 김치이다. 김장김치를 겨우내 먹고 나면 남는 끝물 김치인데, 어려운 시절에 버릴 수는 없고 김치찌개나 김치전으로 이용하던‘재활용’ 음식이다.
그런 천덕꾸러기 묵은 김치가 한두해 전부터 한국에서 갑자기 뜨기 시작했다. 6개월에서 1년, 때로는 햇빛 안드는 폐광에서 3년을 숙성 시켰다는 선전과 함께 묵은 김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묵은지 전문집, 뚝배기에 묵은 김치요리를 담은 오모가리(뚝배기를 의미하는 전주지방 사투리) 전문집들이 등장하면서 묵은지는 웰빙 식품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김치는 원래 한국밥상에서 항상 없어서는 안될 부식이지만 이번 묵은지 붐은 김치가 메인 요리라는 것이 다른 점이다. 전에는 이미 담아놓은 김치를 요리에 이용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찜이나 조림, 묵은지 삼겹살 구이 등을 위해 김치를 따로 담그는 것이 특징이다. 김치가 밥상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변신했다.
문제는 숙성기간이다. 그 오랜 기간 그 많은 김치를 어디서 다 숙성시켰을까 의구심을 가질만한데 결국 문제가 터졌다. 대부분 중국에서 김치를 담아 묵힌 것을 한국의 음식점들이 사들여 몇달 더 묵힌 후 국산 묵은지로 둔갑을 시켰다는 보도가 한국에서 나왔다. 그 와중에 지난해 가을 기생충알 파동으로 창고에 쌓여있던 중국 김치들도 슬금슬금 묵은지로 섞여 나왔다고 하니 묵은지 즐겨 먹던 사람들은 께름직하지 않을 수가 없다.
LA에도 최근 묵은지 전문식당들이 등장해서 인기를 끌고 있는데, “LA로 오는 김치라고 다를까” 다들 걱정이다. 경쟁 치열한 LA에서 식당으로 살아남으려면 맛, 서비스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가지가 더 필요하다.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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