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재벌 폴 게티는 살아있는 동안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의 하나였지만 그의 일생은 그다지 행복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아버지 폴 게티 시니어는 자식이 방탕한 생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달에 100달러를 주고 개스 펌프공으로 일하게 했다. 그러나 그런 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알콜과 헤로인 중독자가 됐다. 그의 두번째 부인도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하고 그 사이에 난 아들은 은둔주의자가 돼 세상을 피해 살았다.
그의 또 다른 아들 하나인 폴 3세는1973년 로마에서 납치돼 칼라브리아산 속 동굴에 갇혀 지냈다. 1,700만달러의 몸값을 요구하는 편지가 왔지만 그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돈을 낼 수 없다는 답변이었다. “손자손녀가 14명이 되는데 한 푼이라도 지불한다면 14명 모두 유괴될 것”이란 것이 이유였다. 손자의 잘린 귀가 우편으로 배달된 후에야 돈을 내고 풀려났다. 그 후 폴 3세는 약을 먹고 6주간 혼수상태에 빠졌다 회복됐으나 반신불수가 됐다.
원래부터 좋지 않았던 부자 사이는 이 일로 더욱 벌어지고 1976년 폴 시니어가 사망했을 때 폴 게티에게 유산으로 남겨준 돈은 단 돈 500달러였다. 폴 게티의 돈은 그 할머니와 가족 트러스트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는 평생 약물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2003년 숨을 거뒀다.
그러나 오늘 날 세상이 그를 기억하는 것은 석유 재벌로서도 비극적 가정의 가장으로서도 아니고 예술을 사랑한 자선가로서다. 영국 시민으로 귀화한 그는 영국의 내셔널 갤러리에 5,000만 파운드를 준 것을 비롯 1억4,000만파운드를 문화진흥 기금으로 내놨다. 그 덕에 LA 시민들도 게티 센터라는 명물을 갖게 됐다.
게티 센터보다 먼저 세워진 말리부의 게티 빌라가 9년간의 공사를 끝내고 이번 주말 다시 문을 연다. 이미 7월말까지 예약이 완료된 상태지만 가본 사람들 이야기로는 전보다 훨씬 아름답게 단장됐으며 게티 센터보다 훌륭한 문화의 전당이라고 한다.
헌팅턴 도서관과 허스트 캐슬, 록펠러와 카네기 재단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 부자들은 부를 가치 있는 일에 쓸 줄 안다. LA 한인사회는 지난 20~30년간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했지만 아직은 제대로 돈을 쓰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 화랑이라고 몇 개 있지만 제대로 활동하는 곳은 한 두 군데 정도며 그나마 전시회를 하면 한인보다 미국인이 더 많이 오는 것이 보통이다. 소극장과 전시실을 갖춘 ‘코리아타운의 문화공간’을 자처하며 야심적으로 문을 열었던 정동 아트홀도 얼마 전 재정난으로 문을 닫았다. 이제는 한인타운에도 게티를 본 받을 만한 사람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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