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이민생활에서 짬을 내 긴 여행을 떠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대부분 자영업에 종사하는 이민 1세의 경우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관광지들이 많은 캘리포니아조차도 제대로 여행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 허다하다.
지난해 관광회사를 통해 단체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3박4일 일정으로 같이 다니며 여러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됐는데 유독 50대의 한 아주머니만은 다른 관광객들과 한마디 말도 없이 여행 내내 창 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각자 여행의 소감을 한 마디씩 하는 시간이 마련됐는데 그동안 침묵만 고수했던 이 아주머니는 차례가 되자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유인 즉 30여년 동안 살아온 남편에게 이혼하자는 편지를 써 놓고 여행을 떠난 것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이제는 남편과 헤어질 때가 왔다고 생각했던 이 아주머니는 목적지를 알리지 않고 혼자서 훌쩍 가방을 챙겨 집을 나왔다. 그녀는 “남편과 떨어진 지난 며칠간이 가족과 남편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 다시 가족으로 돌아갈 것”이라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4년전에 부인과 사별하고 남은 여생을 혼자만의 여행으로 보낸다는 한 할아버지(74)도 단체 관광버스에서 만났다. 이 할아버지는 “처음에는 혼자서 여행을 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지만 30여회에 걸친 여행으로 인생을 다시 배우게 됐다”고 말한다. 아내를 먼저 보낸 후 절망적이었던 삶이 여행으로 다시 시작된 느낌을 받는다고 전한다.
밸리에 거주하는 50대의 한 지인은 20여년 이민생활 동안 여행은커녕 휴일도 모르고 살아왔다. 일에만 매달리며 부인과는 별다른 대화도 없이 매일 똑같은 생활을 반복해 왔다. 누군가 먼저 시작한 것도 아닌데 이들은 서로 각 방을 쓰게 됐으며, 10여년간 성생활도 없는 룸메이트에 가까운 사이로 둔갑했다.
어느날 생활의 지루함과 권태를 호소하는 부인의 뜻을 따라 이들은 이민생활 처음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중 긴 대화를 나눌 수도 있었으며 서로 인생을 다시 정리하는 기회도 가졌다. 자연스럽게 호텔 같은 방에서 묶으면서 정말 오랜만에 이들이 부부라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고 한다. 이들은 이제 서로 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여행을 계획한다고 말했다.
USC 박사 과정에 있는 한 후배는 지난달 5년된 그의 혼다 차량의 마일리지가 20만마일을 넘어섰다. 혼자서 무작정 차를 타고 수백, 수천마일씩 달려 여행을 떠나는 그의 버릇 때문이다. 이 후배는 “외로운 유학생활을 여행으로 달랜다”며 “차를 타고 목적지도 없이 달리다 보면 새로운 구상이 머리 떠오르면서 자신의 새로운 면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박사 과정보다 더욱 중요한 공부를 길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볼거리를 통한 시각적인 기쁨 외에도 외지로 떠나 자신의 인생을 옆에서 보면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여행이 가져다주는 부가가치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여행이라는 ‘여유’를 통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두현
특집 1부 차장대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