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레토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20세기초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가 당시 부의 편중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공식화한 것인데, ‘전체 결과의 80%는 전체 원인의 20%에서 비롯된다’는 게 요지다. 가령 상위 20%의 부자들이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거나 20%의 소비자가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하는 현상 등이 그 예로 제시된다.
흔히 ‘80대20’ 법칙으로도 불리는 이 법칙은 은행들이 고액 자산가들을 위한 VIP 서비스를 강화하는 근거로도 원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소위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 뱅킹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하는데, ‘상위 20%의 고객이 수익의 80%를 창출한다’는 원리가 고객들의 거래 규모에 따라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곳 한인 은행권에서도 이같은 VIP 뱅킹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올들어 한 은행에서 VIP 뱅킹 전담 센터를 설치해 운영하기 시작한 뒤 두 세 곳의 은행들이 이와 같은 부서 설치를 결정했거나 프라이빗 뱅킹 시스템 도입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아예 프라이빗 뱅킹을 전문으로 표방한 은행도 신설됐다. 한 은행 간부는 한인 은행들의 이같은 움직임의 배경의 하나로 파레토의 법칙을 들었다.
한인 은행들의 수익 구조가 이 80대20 법칙에 그대로 맞아떨어지는지는 실제 따져봐야 알 수 있겠지만, VIP 뱅킹이라는 방식을 통해 고액 자산 고객과의 장기적 거래 관계 유지로 안정적 수익원을 확보한다면 은행 영업에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러 은행 관계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그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일단 프라이빗 뱅킹이 이미 보편화된 주류 은행권이나 현재 급속한 보급이 이뤄지고 있는 한국과 이곳 한인 은행들의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는 지적이다. 고액 자산가들을 상대로 제대로 된 VIP 뱅킹을 하려면 기본적인 예금 및 대출 서비스는 물론 보험이나 투자 상품 판매부터 부동산 및 세금 관련 상담, 그리고 자산 관리(wealth management)까지 종합적인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사실상 예금과 대출 업무가 영업의 거의 전부인 한인 은행들로서는 아직 기반이 취약해 VIP 뱅킹이 단지 고급스런 전용창구를 이용하는 것밖에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 거래 규모에 따른 고객들간 서비스 ‘차별화’가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도 문제여서 VIP 마케팅을 너무 부각할 경우 일반 고객들의 거부감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프라이빗 뱅킹의 도입이 금융 서비스의 전문성 강화 차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한인 은행권의 총 자산 규모가 100억달러를 돌파할 정도로 규모에서는 성장했지만 금융 서비스의 전문성과 다양성에서는 주류 대형 은행은 물론 일부 중국계 은행들에게도 뒤진다는 평가도 있다. 이같은 시스템의 정착이 아직도 한인 은행을 외면하고 있는 우량 고객들을 끌어올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한인 은행들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80%의 다수에 대한 서비스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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