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한 후 치른 3차례 평가전에서 한국축구가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새삼 ‘명장 밑에 약졸 없다’는 옛 말이 떠오른다. 불과 두세달전 요하네스 본프레레감독 시절과 비교할 때 이게 정말 같은 팀이었나 싶을 정도다. 팀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의 팀 칼라를 확실히 심어줄 시간도 거의 없었고 멤버구성도 몇몇 파격적인 신인발탁이 있긴 했지만 큰 골격은 거의 그대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짧은 시간 내에 보여준 팀의 변화는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다.
단신에 단단한 인상이 나폴레옹을 연상시키는 아드보가트 감독은 닉네임 ‘장군’의 카리스마가 온 몸에 넘쳐흐른다. 지난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네덜란드를 8강으로 이끌었고 지난해 유로2004에서는 4강까지 올려놓았던 명장답게 자신감과 함께 자신만의 뚜렷한 축구철학을 갖고 있어 팬들에게 든든하다는 안정감을 안겨준다. 낯선 외국에서 지휘봉을 잡은 지도자가 선수들은 물론 팬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결과가 어떨지는 한국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고도 불명예스럽게 물러나야 했던 전임 본프레레감독을 생각하면 잘 알 수 있다. 출발부터 한국팬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아드보카트 감독은 정말 첫 단추를 기막히게 잘 끼운 것 같다.
하지만 출발이 좋았다고 끝도 좋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정작 중요한 것이 끝이 좋아야 하는 것이다.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들어낸 거스 히딩크 감독이 팀의 계속된 부진으로 인해 한때 감독 경질설에 시달리기도 했었지만 결과적으로 영웅이 된 탓에 이 시절은 거의 잊혀진 스토리가 됐다. 히딩크는 그 고비를 뚝심으로 잘 넘기고 자신만의 매스터플랜을 끝까지 밀고 나가 월드컵 본선 1승이 없던 팀을 4강까지 올려놓는 일생일대의 역작을 만들어낸 것.
반면 그의 뒤를 이어받은 움베르토 코옐류 감독과 본프레레 감독은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지 못하고 히딩크가 만들어놓은 완성작품에 안주하려다 중도하차의 비운을 맞았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과감하게 신인을 발굴, 실전에서 중용해 기존스타들의 위기의식과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과 상대에 따라 전천후로 전술을 바꿔나가되 확실한 팀컬러는 흔들림없이 유지하는 용병술과 전략에서 히딩크 감독과 흡사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히딩크 감독은 척박한 토양에서 밭을 가는 것처럼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던 반면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미 기초공사가 끝난 상태에서 지휘권을 잡은 것뿐이다.
삼국지에 보면 약한 군대로 훨씬 강한 상대를 깨뜨린 명장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병력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효과적으로 자신의 힘을 활용하느냐가 승패를 결정한다는 뜻. 축구도 전쟁과 마찬가지다. 전혀 자원이 없다면 모르지만 이제 한국도 세계적 수준에 근접한 선수들이 상당히 많다. 현재 가진 전력만으로도 이를 극대화할 수 있다면 내년 월드컵에서 또 다른 신화를 만들 역량이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이를 이뤄낼 수 있는 지휘자를 갖게 된 것은 큰 행운이다.
김동우
스포츠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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