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이 하도 오래 덜컹거려서 돌아다보니 빗물 젖는 유리창에 단풍 한 잎 붙어있다 세상에 원 이럴 수가? 혈서를 받게 되다니?!
유안진(1940~ ) ‘가을고백’ 전문
바람이 불고 비가 들이치는 어느 가을날 유리창이 몹시 덜커덩거린다. 무심코 밖을 내다보던 시인의 눈에 잡힌 것은 젖은 유리창에 달라 붙어있는 단풍잎 하나이다. - 그랬구나, 저 단풍잎이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구나 - 그 단풍잎은 붉은 피로 쓴 애절한 편지 한 장이다. 누군가가 보냈을 이 편지, 비에 젖고 바람에 불려 금방 날려갈 것만 같은 다급한 상황에서 어찌 창문을 두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받자, 그 누군가의 사연이 담겨있을 법한 마지막 편지를, 반드시 읽어야하는 가을의 저 편지를 받아 읽으면 어쩌면 누군가가 혈서로 쓴 그 편지보다 더욱 절절한 마음으로 가을을 읽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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