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졌지만 중년 이상 세대에게는 귀에 익은 이름들이 있다. 학급마다 말순이, 끝순이, 말자 … ‘마지막’을 의미하는 이름들이 한둘씩은 꼭 있었다.
그런 집안의 가족 구성은 안 봐도 알만하다. 딸이 서넛, 심하게는 예닐곱이 되는 딸 부잣집들이다. 줄줄이 딸이 태어나자 제발 이번 아기가 딸로는 마지막이 되게 해달라는 염원을 아예 아기의 이름으로 못을 박은 것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태어남이 집안 어른들에게 얼마나 큰 실망이었는지를 평생 확인하게 하는 슬픈 이름이다. 다음 번에는 필히 남동생이 태어나게 해달라는 ‘필남’, 귀여운 남동생을 보게 해달라는 ‘귀남’도 같은 맥락의 이름들이다. 남존여비 시대에 너무도 당연시되던 남아선호의 부산물이다.
말순, 끝순이들이 태어나던 때로부터 반 백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의 남아선호는 좀 개선이 되었는가. 집집마다 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이니 일단 말순이, 끝순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 한둘밖에 안 되는 자녀들 중 여아보다 남아가 월등히 많은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통계청의 최근 발표에 의하면 2003년 기준, 한국에서 여아 100명당 남아 출생비율은 108.7명이다. 조사 대상이 된 세계 45개국 중에서 한국은 그루지아, 아제르바이잔, 대만, 홍콩에 이어 5번째로 남아 출생비율이 높은 나라로 꼽혔다.
줄줄이 태어나는 딸 때문에 근심이 깊던 한국 가정에서 이제는 태어났다하면 주로 아들인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변화가 저절로 일어날 수는 없다.
자연상태에서 남녀 출생 성비는 105나 106이다. 여아 100명당 대여섯명 많은 남아가 태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남성의 Y염색체를 가진 정자가 활동성이 높아 수태율이 높은 것이 한 원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남성은 성장 중 사망률이 높고 여성은 생존력이 강해 결혼 적령기쯤 되면 남녀 비율이 1대 1로 균형을 잡는다고 한다.
한국에서 비정상적으로 아들이 많이 태어나는 비결은 물론 태아 성감별이다. 수태된 아기가 남아인지 여아인지 알아낸 후 여아이면 낙태를 시켜 버리니 딸이 귀할 수밖에 없다. 이미 여러 해전부터 초등학교마다 여자아이 수가 부족해 남녀 짝을 맞출 수가 없게 되었고, 그 불균형은 결혼 적령기까지 이어질 것이다. 2010년쯤 되면 남성 100명당 17명은 여성이 없어 결혼을 못한다는 전망이 이미 나와있다.
미주에 사는 우리는 한국의 일이니 우리와 무관하다고 안심할 게 아니다. 이민보따리는 한국의 남녀 성비까지 같이 싸서 들여오고 있다. 지난 2000년 기준 미국에 이민 온 한인인구를 보면 10세 미만 아동의 성비는 5대4로 남아가 현저히 많다.
‘아들 욕심’은 더 이상 개인사가 아니다. 여성은 부족하고 남성만 있는 세상이 어떨지, 그 불균형이 앞으로 사회를 얼마나 불안정하게 만들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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