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을 담임하던 목사님이 떠나고 그 목사님을 중심으로 모여서 한 공동체를 이루었던 교회의 교인들이 여러 갈래로 갈라서고 있다 그 갈라짐의 한 줄기에 나도 서 있다.
외부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믿음이 적은 자들이기 때문에, 또 어떤 목사님은 너희들은 사랑을 할 줄 모르므로 이 갈라섬에 있는 자들을 질타하지만 이는 필연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한 목사님을 중심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그 중심이 대안도 없이 사라지고 난 후 그 목사님의 DNA를 뽑아 복제하여 그와 같은 목사님을 모시지 않는 한 어떻게 2,000여명을 다 만족시킬 수 있단 말인가?
교인들은 엄마 없는 자식들처럼 주일마다 초빙강사를 모셔다가 설교를 들으면서 새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이 새 엄마가 오자 이 엄마가 좋다는 쪽과 싫다는 쪽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새 엄마가 들어와 그 동안의 살림방식을 무시하고 새 엄마의 방식대로 이 살림을 살고자 할 때 그 전의 살림방식에 젖어있던 이는 적응이 안돼 불편하여 힘든 중에 새 엄마가 여기 올 때 떠나온 곳에서 완전하게 이혼서류를 해 놓고 오지 않고 복잡한 문제를 남겨놓고 옴을 알고 새 엄마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오래 기다리다 맞이한 새 엄마가 너무 좋아 “그까짓 서류가 무슨 상관이야 많은 사람이 좋아하면 됐지”라며 이렇게 좋은 새 엄마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본적(교단)까지 바꾸고 새 엄마와 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이리하여 결국은 서로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결국 피땀 흘려 벌어서 헌금한 막대한 돈을 자기들 주장을 대변해주는 변호사의 주머니로 갖다 바치는 것이다. 문제는 누가 옳고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이다. 새 엄마는 좋아 할 수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20여 년 영적인 언덕(교회)을 삶의 고비마다 눈물을 오르내리며 내 이웃의 마음에 기쁨에 동참했던 우리들이 나와 생각을 달리한다 하여 그 무리들을 교회당 밖으로 내 쫓고 자기들끼리 차지한 교회당에서 인기 강사를 모셔다가 부흥회를 하고 재해 구호성금을 이만큼 했노라고 신문에 이름을 내는 것을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퀘이커 교도들은 영국 성공회의 박해를 피해 미국 신천지로 왔고 그들의 신앙이 미국의 토대를 이루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그들을 박해했던 성공회를 멸하지도 않으셨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하여 원수로 삼아 싸우지 말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여 타협함이 현명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방식은 감히 알 수 없지만 다만 한가지 그가 창조하신 ‘다름’을 ‘옳다 그르다’ 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보시기에 좋을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다.
장훈애 / 팔로스 버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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