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년 사이 미국 학계에서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현재 한국학 교수 채용공고를 내고 있는 대학은 프린스턴, 스탠포드, 코넬, UC 샌디에고, 뉴욕, 미시간, 윌리엄스, 스미스, 조지 워싱턴, 캔사스, 버지니아, 워싱턴, 다트머스, 미네소타 등이다. 한국과 관련된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거나 논문이 거의 끝나가고 있는 학자들에게는 미국 대학에서 자리잡기에 이보다 더 좋은 때가 없었다. 실제로 한국학 교수에 대한 수요는 공급을 훨씬 앞지르고 있는 실정이다. 몇몇 대학은 몇 년째 공고를 내고 있으면서도 적격자를 못 뽑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학이 이처럼 인기 있는 분야가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성장이다. 한국의 경이적인 경제발전과 민주화 과정은 사회과학자들에게는 흥미진진한 주제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기아와 가난, 폭정과 정치혼란의 악순환에서 못 벗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발전과정은 학술적인 측면에서 또 정책적인 측면에서 지속적인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한국의 대중문화가 국제사회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하면서 한국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한 몫을 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북한 핵 문제다. 냉전 이후 미국이 새로운 국제질서를 정립하여 가는 과정에서 북한은 이라크, 이란 등과 더불어 미국의 대외정책의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테러확산 방지라는 미국 외교정책의 큰 기조 속에서 볼 때 북한은 분명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북한을 이해하고, 남북관계, 한미 관계, 북미 관계를 보다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분석하기 위해서는 한국학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세 번째 이유는 미국 내 한인사회의 급격한 성장과 팽창이다. 한인 2세, 3세들이 미국 대학에 진학하면서 한국어는 물론 한국의 역사,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관심을 보이자 대학 당국들이 앞다투어 한국학 관련 과목들을 개설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한국학에 대한 수요가 아무리 증가하여도 이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이 없다면 오늘과 같은 한국학의 ‘호황’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한국 정부는 국제교류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을 통해서 한국을 연구하는 외국학자들과 대학연구소 등을 대폭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의 기업들도 미국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하면서 기업이미지 홍보, 위상제고 등의 차원에서 미국 대학들의 한국학 연구에 직접적인 지원을 시작했다.
그렇다면 한국학은 왜 필요한 것인가?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깊이 있는 이해는 지속적이고 건설적인 한미관계를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문학, 정치, 경제, 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수 없이 포진해 있는 미국대학에서 미래의 미국 지도자들은 대부분 중국과 일본에 대한 심도 있는 과목들을 수강해보고 졸업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대 중국, 대 일본 정책을 담당하면서 단기적인 국가간의 마찰이나 충돌을 상호간의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극복해 나간다.
반면 한미관계는 이와는 다른 양상이다. 50년 넘는 ‘혈맹’이자 서로 중요한 교역국이면서도 한미간의 문명과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깊이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렇기에 군사안보, 경제적인 차원에서 아무리 중요한 상대라 하더라도 양국관계는 늘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건설적이고 튼튼한 한미관계를 위해서는 뛰어난 외교력, 협상력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게 하는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한인사회의 경제력·사회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미국사회에서 이에 상응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문화에 대한 주류사회의 이해와 존중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한국학은 우리의 미래를 담보해 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한국학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절실히 요구된다.
함재봉
USC 한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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