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공산주의의 창시자가 칼 마르크스라는 데는 이론이 없다. 그는 자본주의의 멸망과 공산사회의 도래를 외치며 60 평생을 보냈다. 그런 그의 묘지가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인 영국 런던에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묘지만 영국에 있는 것이 아니다. 1849년 31살의 나이로 런던에 발을 디딘 그는 1883년 65세로 나이로 숨을 거둘 때까지 성인으로서의 인생 대부분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 자식들도 모두 영국 국민으로서의 삶을 살았음은 물론이다. 대부분 자살하거나 병사해 단명으로 생을 마치기는 했지만.
그가 영국에 정착한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시 자본주의의 심장인 영국에서 이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면 대영 도서관으로 달려가 하루 종일 책을 읽는 것으로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그가 머물었던 유럽 다른 나라에서는 그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태어난 독일은 물론 프랑스, 벨기에 등 그가 활동했던 나라마다 그를 잡으러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가 그토록 증오하던 자본주의의 대부 영국만이 그를 받아들이고 자유롭게 연구 활동을 할 수 있게 허용했다.
소련이나 북한이 공산주의를 증오하고 그 파멸을 촉구하는 사람과 그 가족이 온전히 살도록 내버려두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마르크스의 삶은 온갖 화려한 이론에도 불구하고 두 체제의 실제가 어떻게 다른가를 보여주는 표본이다.
요즘 한국에서 미국에 와 학위를 따가거나 언론 활동을 하다 돌아간 후 그를 발판으로 사회 유명 인사로 활동하면서도 반미의 선봉에 서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일수록 자녀를 미국에 보내 미국 시민권을 따게 하거나 돈을 많이 주는 미국 회사에 취직을 시킨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들이 “6.25는 통일 전쟁이며 미국은 이를 방해한 원수”라고 주장하고 있는 동국대의 강정구 교수와 KBS를 반미 선동의 도구로 만든 정연주 사장이다. 강 교수의 큰아들은 미국 대형 로펌에 취직했으며 둘째는 주한 미군 배속 한국군인 카추사로 군 복무를 마쳤다고 한다. 하나는 “원수의 나라” 회사가 주는 돈으로 먹고살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통일을 방해하는 원수의 군대” 앞잡이 노릇을 한 셈이다.
또 정 사장의 두 아들은 영주권을 이유로 병역을 면제받더니 최근에는 아예 미국 시민권을 땄다는 소식이다. 시민권을 땄으면 미국에 충성을 하겠다는 서약도 했을 것이다. 입만 열면 미국을 헐뜯으면서 자식들이 그런 못된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은 어떻게 눈뜨고 봤는지 모르겠다.
입으로는 반미를 외치지만 발로는 어떻게 해서든지 미국 땅을 밟으려는 것이 많은 한국인들의 태도지만 이들 두 사람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다. 강 교수는 자신을 비판한 한 ‘진보적 지식인’을 보고 “미쳤다”고 말했다는데 남보고 미쳤다고 하기 전에 자신부터 제정신인가 돌아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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