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름다운 삶
▶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마크는 의사 휴게실을 나와 높은 천장의 긴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그의 가슴은 터질 듯이 아팠다. 방금 방영된 TV 화면에 보도된 뉴올리언스의 참상이 그의 머리 속을 꽉 채우고 혼란케 했다. 얼핏 지나간 화면 중에 그는 초췌한 모습의 흑인 할아버지 얼굴을 본 것 같았다. 모두 울부짖는 얼굴 속에서 할아버지는 자기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렇다. 할아버지다. 그는 입 속으로 부디 살아만 계십시오 라고 속삭이고 2층 중환자실로 올라갔다.
리처드 대위는 산소 호흡기를 끼고 눈을 감고 있었다. 새로 간 머리 붕대는 그의 얼굴을 환하게 했다. 평안해 보였다. 옆 탁상에는 모퉁이가 헐고 색 바랜 자주색 성경책이 방을 지키고 있었다. 마크는 손을 리처드 손 위에 포개고 그냥 선 채로 무엇인지 중얼거렸다.
마크와 리처드는 애틀랜타에서 함께 자랐다. 리처드가 한 살 위지만 항상 같은 학년의 죽마고우다. 마크는 세심하고 리처드는 대담했다. 둘은 학교 축구팀의 명콤비였다. 마크는 백윙으로, 리처드는 포워드로 학교를 내내 우승을 지키게 했다. 둘은 졸업할 때까지 부모님 가게에서 일하면서 컸다. 일요일 가게가 문 닫는 날 부모를 따라 교회 가는 날이 휴일이 되었다. 둘은 시간이 나면 푼푼이 모은 돈으로 미국의 곳곳을 쏘다녔다. 한번은 뉴욕서 집 없는 사람의 경험도 해봤다. 추운 겨울 몬트악 포인트 바닷가에서도 잡을 잤다. 며칠을 굶어가면서 애리조나 사막길을 밤새 걷기도 해보았다.
이 둘에게 갑자기 슬프고 어려운 날이 닥쳐왔다. 마크의 아버지는 강도의 손에, 리처드의 아버지는 지병으로 이들이의 고등학교 졸업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둘은 졸업과 동시에 군에 입대했다. 리처드는 해병대로, 마크는 해군으로.
운명은 이들을 꽁꽁 묶어 놓고 있었다. 리처드가 아프리카의 미국인 보호작전에 투입되어 피투성이가 되어서 돌아왔을 때 마크는 구축함 의무실에서 그의 상처를 치료했다. 마크가 실 팀의 의무병으로 쿠웨이트 침공 시 리처드는 그들을 포위 속에서 구해주며 다시 해후를 했다. 그 후 리처드는 용맹과 투철한 전우애로 해병 장교학교를 마치고 이라크로 갔다. 마크는 뉴얼리언스의 투레인 의과대학에 입학했고, 졸업과 동시에 베데스다 해군병원에서 내과 수련의 과정 중이다.
리처드가 바그다드 근교의 수색작전 중 머리에 총상을 입고 베데스다로 후송돼 왔을 때 마크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얼굴에까지 감긴 붕대는 마치 인조인간처럼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응급실 당직인 마크는 이름을 보고 정신이 혼잡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총탄에 쓰러져갈 때도 그랬다. 아버지는 마크에게 몸을 기대고 머리를 떨구셨다. 그는 붕대를 풀 때 손을 심하게 떨었다. 눈에서 눈물이 리처드의 창백한 얼굴로 방울져 떨어졌다.
마크는 병원 정문을 나와 그냥 걸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뉴올리언스이 기숙사 할아버지의 얼굴이 리처드 얼굴과 겹쳐 떠올랐다. 4년간 그의 아버지처럼 그를 챙겨주었던 할아버지. 밖에서도 들릴까 말까 한 병원의 긴급방송은 ‘닥터 마크 킴, 지금 곧 전투복장을 하고 애리조나 항공모함 의무대에 보고하시오. 목적지는 걸프만이오’라고 계속 울리고 있었다.
양민교/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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