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민
1985년 필자가 상항주립대에 다니며 훌륭한 예술가가 되려고 열심히 작품활동을 할때의 일이다. 상항베이지역의 쟁쟁한 미술교수들로부터 지도를 받으며 미술과의 전 과목을 모두 최고학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문득문득 여러면에서 미술가가 되는것에 참을수없는 답답함을 느끼게되는것이었다. 그때 가만히 앉아서 열심히 작품활동만 했더라면 미술인이면 모두 목을 매던 NEA (미술인후원 미연방 정부단체) 지원리스트에도 올랐을 테고 한국에도 들락거리며 전시회를하는 유명미술인 백종민이 되어있었을것인데 그해 가을학기, 뜻하지않게 나의 관심을 통채로 사로잡은 새로운 미술사 강의가 있었다.
미술사교수 위트니 채드윅의 여성미술인들 초현실주의 운동참여에관한 강의로 시작되어 내내 이어진 여성미술사는기존의 서양미술사에 존재하지않던 여성미술인들의 자리매김은 물론, 그들의 사회적 지위향상과 자가성찰을 겨냥한 매우 획기적인 과목이었다. 그때에 필자주변에는 재미한인여성미술인들이 꽤많이 활동하고있었다. 그들을 인터뷰하며 논문을 쓰기시작하였는데 대부분의 말에 의하면 주류미술계에서 그들의 작품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는것이었다. 그것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재미한인여성미술인과 그들의 작품, 그리고 주류미술계에관하여 미술인자신들이 알리고 목소리를 내는것이 시급하다는것에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하여 1987년 재미한인여성예술인 심포지움이 작가 작품소개와 창작활동을하며 겪는 경험을 발표하는 학술심포지움이 밀즈컬리지에서 열렸다. 심포지움후에도 밤을 세워가며 열띤 자기고백내지는 토론과 미래의 계획이 이어졌다. 그 심포지움이후 다민족주의문화에 힘입어 꽤 오래동안 재미한인, 아이덴티티, 이민자미술, 이민여성, 여성미술인등의 단어가 떠오르며 전시회가 미전역의 미술관으로 퍼지는듯하였다.
요즈음 미주류 미술계를 보면 꽤많은 재미한인/한인여성미술인들의 이름이 보이고 미술대학에도 한인 미술교수들내지는 미술부학장까지있고 재미한인미술학생들 재학률이 무척 높아졌음을 볼수있다. 그뿐만아니라 재미한인/한인미술사학자들과 미술비평가들의 주류미술잡지글기고, 또한 전시회기획역시 활발하게 전개되고있음을 본다. 이러한 활동은 비주류미술계에도 곳곳에서 떠오르는것을 발견한다. 필자가 흥미있게 생각하는것은, 전세계에 펼쳐져있는 우리한인들의 삶의터와 그곳에서의 시간, 세대차이를 떠나서 그리고 성별의 차이를 제외하고도 느껴짐은, 얼마나 우리민족이 예술을 삶을 제대로 사는 오직 유일한 길로 여겼는가하는것이고 그전통이 그토록 험한 역사를 거치면서도 얼마나 도도하게 우리의 맥에서 맥으로, 뜻에서 뜻으로 대대로 이어지며 아직도 우리삶의 풋풋한 원동력이되고있는가하는것이다. 물론 우리민족만 그런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독 예술을 삶의 길로 받아들이는 민족이 어느 민족이며 그들의 철학이 무엇인지 한번 살펴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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