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6년 전 이맘때 한국에서는 옷 로비 의혹사건 진상조사 청문회가 열렸었다. 그때 누가 누구의 옷값을 대납했는지, 그 대가로 어떤 로비가 오고 갔는지 … 청문회로 밝혀진 ‘진상’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청문회로 인해 한가지 국민들이 몰랐던 사실이 밝혀져서 한동안 화제가 되었었다. 바로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본명이었다. 국회 법사위 청문회장에서 앙드레 김은 예명이 아니라 본명으로 증언대에 서야했고, 그의 본명 ‘김봉남’이 호명되자 청문회장은 웃음바다로 바뀌었다. 청문회를 지켜보던 TV 시청자들도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코미디나 개그도 아니고 단지 이름 석자가 폭소를 불러낸 이유는 무엇일까. 수십년 화려한 패션 디자이너로 각인된 그의 이미지와 이름이 너무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당시 청문회장에서 그는 이름을 서양식으로 바꾸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디자인 공부를 하던 청년시절, 주한 프랑스 대사관의 한 외교관이 “세계적 디자이너가 되려면 한국의 성은 간직하더라도 이름은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앙드레라고 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세계적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미국에 사는 순간 이민1세들은 미국식 이름을 갖느냐 마느냐로 한 두번은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미국이름을 하나 만들기도 하고, 끝까지 한국이름을 쓰기도 하는 데 양측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우선 이름을 바꾼 경우. 얼마 전 한 여성독자가 편지를 보내왔다. 그는 “이민국 직원들이 한인들은 시민권 받을 때 왜 그렇게 많이 이름을 바꾸는지 의아해 한다는 보도를 보았다”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1980년 시민권 취득 당시 그는 이름을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카운티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동료들이 ‘금자’라는 자신의 이름을 도무지 기억하지 못하고 발음하기도 어려워해서 결국 ‘에스더’로 바꾸었다고 했다. 이름이 쉬워지자 미국친구들과 쉽게 친해지더라면서 “이름 바꿀 때 당당 하라”고 그는 말했다.
좋은 이름이란 부르기 쉽고, 듣기 좋고, 뜻이 좋은 이름이라고 본다면, 미국에서 영어 이름은 ‘부르기 쉬운’ 이름에 해당된다. 타민족 동료나 친구, 고객들에 대한 배려이다.
아울러 미국식 이름은 부담이 없어 좋다는 의견도 있다. 60대 초반의 한 주부가 말했다.
“나이 들어 사귄 친구들은 아무리 가까워도 ‘영희야’‘순희야’하기는 어색해요. 그렇다고 ‘미세스 김’‘미세스 박’하자니 거리감이 있고요. 그럴 때 ‘낸시’나 ‘제시카’같은 이름이 있으면 부르기에 부담이 없지요”
두 글자 이름이 어려워 앞 글자만 퍼스트 네임으로 쓰면서 생기는 혼란이 미국이름을 쓰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김영식, 김영국, 김영희, 김영애 등이 모두 ‘영 김’이 되면서 엉뚱한 사람 교통위반 티켓을 받거나, 심한 경우 범죄 용의자로 지목을 당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이름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이미지’의 중요성을 말한다. 이름이란 나를 대표하며 평생 붙어 다니는 것인데 내 이미지와 다른 엉뚱한 이름을 갖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내가 나를 봐도 전혀 ‘수잔’이나 ‘리사’ 이미지는 아니다. 외모도 문화도 한국식이고 영어도 잘 못하면서 미국 이름은 쑥스럽다”고 한 직장여성은 말했다.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민족적 특성을 잃고 싶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미국대학에서 교수로 오래 일하다 은퇴한 분이 있는데 그는 미국 생활 40년이 넘었지만 한번도 미국이름을 가져본 적이 없다.“미국 이름을 쓰면 미국 사람들과 헷갈리기 쉬워서”가 이유였다.
미국에서 한인들에게 좋은 이름은 어떤 이름일까. 동화만을 강조하던 미국사회는 점차 민족적 고유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비야라이고사 LA 시장은 ‘앤서니’가 아니라 ‘안토니오’라서 더 개성이 돋보이는 측면이 있다. 한인으로서의 이미지도 살리면서, 부르기 쉽고, 어감도 좋고, 뜻도 좋은 그런 이름들을 개발할 필요가 있겠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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